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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because you think if you're fearless even death would be impressed,"


여름은 좋은 거구나. 내가 여태 살면서 살았던 곳 중 제일 더운 도시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여름은 좋은 계절이라고 읊어본다. 절대 싫기만 한 계절일 줄 알았다. 더워하느니 차라리 추워하는 것이 더 낫다는 지론을 지탱하며 지내온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행복해보여서인지 내가 행복해서인지. 바다는 항상 바로 여기에 있다. 상어가 해변가로 몰려올 수 있는 해질 무렵 및 새벽만 빼고는 언제든 물장구를 칠 수 있다. 날이 더우니 사람들은 툭하면 모여 논다. 모래사장에는 음악을 틀어두고 건강한 얼굴로 온갖 운동과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해변 의자를 가져다두고 바다를 바라보며 남부 도시답게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그들 뒤로는 거북이 알 둥지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있다. 그게 즐거운 건 맞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기분을 산꼭대기에 올려뒀다가 밑바닥으로 떨구기를 반복한다. 반복한다. "나는 요즘 비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에 죽을 만큼 행복하다 생각하며 잠들다가도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깰 때마다 죽을 만큼 죽고 싶고 오늘은 울고 싶어서 벼랑에 매달리듯 베개 끝을 잡았는데도 울지 못했다"고 올 초의 나는 몰래 적었던데 그때와 지금은 계절만 반대일 뿐 비슷한 굴곡인 걸 보면 나는 어쩌면 평생 이랬고 어쩌면 평생 이럴 거라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까닭은:


감정이 그렇게 극과 극을 오갈 때, 천정zenith로 치솟는 극은 그 모든 황홀의 시발점을 다 잊어도 좋을 만큼 아무래도 좋지만 또 그만큼의 폭으로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극은 작고 하찮은 사건(귀가 한껏 드러나도록 공들여 올림머리를 했는데 깜빡하고 귀걸이를 하지 않았다)부터 현실적인 안타까움(멍청하게도 차 헤드라이트를 밤새 켜두었는데 '그 누구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네(이아립)') 그리고 거의 관념에 가까운 슬픔(혼자 생각하고 결론지어보니 아무래도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 나는 다 틀린 것 같다)에 이르기까지 몹시 다양한 것들로 인해 끝없이 낙하하기 때문에, 그런 난잡한 방식으로 방사放射하는 무차별적 감정을 하나로 묶는 법을 나는 도통 모르기 때문에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그저 무지한 얼굴로 내 자신의 감정에게 얻어맞을 수밖에





그래도 일거리는 풍족해서 다행이다. 뉴욕에 다녀온 이후로, 혹은 박사 2년차가 된 이후로, 하고 있던 연구에 신기하게도 힘이 실어졌다 - 이것은 기분보다 조금 더 실제적이다. 얼마 전에 실험실에 들어온지 칠 개월 만에 처음으로 미팅에서 그간 모아둔 데이터 발표를 했는데 실험실 사람들 각자의 배경이 다양해서인지 좋은 피드백을 꽤 받았다. 큰 실험실의 장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동시에 다른 프로젝트도 몇 개 더 벌리기 시작했다. 안 바쁜 것보다 바쁜 것이 더 좋다는 건 내가 안 바빠봐서 잘 안다. 감사한다. 나는 치열할 것이다.


그제는 거의 일 년 만에 처음으로 손에 생쥐를 잡았다. 새로 계획한 실험을 위해 생쥐 뇌에서 세포를 직접 뽑아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태어난지 정말 며칠 되지 않은 생쥐를 써야한다. 생쥐 뇌는 여러 번 뽑아봤지만 그렇게 갓 태어나 눈도 못 뜨고 내 손가락보다도 작은 생쥐는 다루어본 적이 없어서 시니어 포닥의 시범을 보아야했다. 시니어 포닥은 새끼 생쥐 한 마리를 능숙하게 다룬 뒤 나에게 나머지 아홉 마리를 주며 연습하라고 했다. 어차피 케이지 안으로 못 돌아가는 애들이니까 마지막 한 마리까지 연습하라며, "they are gonna be sacked anyways". 동물을 죽인다sacrifice는 표현을 저렇게 줄여부르는 건 처음 들었다. 내가 서있는 공간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혼자서 그렇게 오마갓 오마이갓 아임쏘리를 연발하며 첫 생쥐 뇌를 뽑고 있었는데 내 뒷자리의 랩텍 아주머니가 내 반응이 우스웠는지 세포를 다루다 말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말했다.


"주디 아줌마, 우리는 모두 지옥에 갈 거에요."


"괜찮아, 클로이! 나 예전 일하던 곳에 매주 마흔 마리씩 쥐 잡는 애가 있었는데 걔 지옥 갔다는 얘기 나 아직 못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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