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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지나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지나는 것에 지나치지 않는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라면 생각대로라도 되어야 텐데 대부분의 경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내 마음은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관둔다손 치더라도 내 생각에 틀림이 있다고 해석이 되어버리면 견딜 수 없다. 재차 곤란하다.


오늘 신경질환 세미나 주제는 만성통증chronic pain이었는데 평소 잘 모르던 분야라서, 오늘 하루 종일 머리가 먹먹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의를 기울여 재미있게 들었다. 고통suffering 혹은 "사회적 통증social pain"을 신체적 통증physical pain과 구분하는 지점이 흥미로웠는데 전자와 후자의 경우 모두 비슷한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연구 보고가 있었다고 했다. 통증은 어쨌거나 통증인 것이다. 인풋이 없어도 아플 수 있고(만성통증), 없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아플 수도 있다(환상지). 그도 그럴 것이 "내 고통은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김경주)." 이상하게 조금 울고 싶었다.


나는 그러나 형태가 있어주는 편이 좋다. 어렵더라도 우리 수준에서 가능한 정의를 내리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야 내가 직접 쥐고 흔들며 확인할 수 있다.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What's in a name?") 물었다지만 이름이란 분명 어떤 테두리이고 윤곽이어서 내가 모르던 것들을 부분적으로나마 드러내 보여준다. 그들이 질병에 괜히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증상들의 총체적인 집합에 이름을 입히면 싸워야할 상대가 명확해진다. 그제서야 만져진다. 진단이 곧 완치로 이어진다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명명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괴롭더라도 자주 위태하더라도 자꾸만 입증하려고 증명하려고 그런 식으로라도 안심하려고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우리들은 모두 이렇게



+ evenings - friend (l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