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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it's hard to forget what we haven't done yet,"


얼마 전 집 근처 영화관에서 Jodorowsky's Dune(조도로프스키의 듄)의 마지막 상영을 보았다. 다큐멘터리는 조도로프스키가 센 남미 억양으로 말하는 "인생의 목표란 뭘까, 네 자신의 영혼을 만드는 일이겠다What is the goal in life? It's to create yourself a soul."와 같은 문장들로 시작했는데, 인터뷰에서 조도로프스키는 방대한 길이의 소설 Dune을 영화한다는 건 어떤 작업이었는지에 대해 열띤 설명을 했다. 소설은 텍스트 즉 다분히 청각적auditory이고 영화는 시각적visual이다, 나는 원작자가 소설에 부려놓은 청각적인 활자들을 내 상상으로 빚어 시각적인 요소들로 재탄생시켜야 했다, 따라서 활자를 영상으로 바꾸는 것 그것은 감각을 전환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시대(70년대)의 젊은이들이 LSD와 같은 마약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도 마약을 사용했을 때와 같은 환각을 내 영화를 통해 경험하길 바랐다, 얼마나 멋진 일이었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예전에 한 친구는, 텔레비전 스크린이나 컴퓨터 모니터로 영화를 보는 행위를 의식하기 시작한 언젠가부터 그 이질감을 견딜 수가 없어졌다고 했다. 클로이, 내가 너무 건방진 걸 수도 있겠지만 나 이제는 모니터로 영화를 보고 있자면 영화를 보는게 아니라 발광하는 물체를 관찰하는 기분이 들어, 그게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참을 수가 없어... 모니터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스크린에 -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 또 다른 세상처럼 드리워지는 영상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 영상 시스템 관리자의 권한을 남용(?)하여 좋은 프로젝터와 좋은 스크린이 있는 빈 강의실을 찾아다니는 모양이었다. 스크린에 영사映寫되는 이미지의 움직임을 볼때서야 이것은 물체가 아니라 영화구나 또 다른 세계구나, 나 이제야 비로소 영화를 보고 있구나, 그런 기분이 든다는 말이었는데,


세상이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 조금은 더 힘있게 단언하는 사람들(정성일)도 있지만 내게 영화는 최면 그리고 환각과도 같아서(들뢰즈) 세상은 영화와 닮아질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로 영화가 아니고 그렇게 절대로 영화가 되지 않을 - 혹은 못할 - 것이다. 영화가 세상으로 한없이 수렴할 수는 있어도 끝끝내 세상이 되지 못하듯 그 반대의 경우도 참일 것이라 생각한다.


내 '생각'이 틀렸더라면 그보다 더 힘이 센 내 '욕망'에 기반하여: 세상이 영원히 영화가 되지 않았으면, 바란다. 세상은 세상으로 영화는 영화로 각각 존재하길 소망한다. 세상마저 영화가 되어버리면 영화는 어느새 세상이겠고 그러면 세상에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없어져버린다. 나는 언제고 세상에서 살고 싶고 언제고 영화로 도망치고 싶다.





남자친구가 나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속도와 방식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그것들은 성급하고 재촉하는 나의 속도나 방식과는 확연하고 일정한 차이가 있는데 그건 그가 자꾸만 앞뒤 안 가리고 발광하려는 나를 스크린에 차근차근 영사하듯 다루고 있지는 않나, 하는 기분에서다. 내가 엉망으로 파도치면 그는 바다를 약속하는 식으로 우리는 성격이 달라서 처음에는 그런 다름이 당연히 낯설었고 나는 그래도 주로 진정했지만 이따금 난반사 심한 바다 같은 스크린에서, 허우적댔다. 익숙함과는 별개로 그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만 나는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영사되는 우리들의 이미지에 움직임이 없어 보여 우리가 혹 영영 멈춰있는 건 아닌가 두렵기도 했다고 솔직해져본다 그러나, 난 네가 너무 잘 보여 24 fps로, 네가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일부러 서두르지 않아도 우리의 프레임은 고른 속도로 넘어간다. 일정값의 fps 이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우리의 뇌가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학부 끝무렵에 배웠다. 24 fps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또렷하게 볼 수가 있다. 놀라운 일이다.


어차피 내달리는 세상에서 우리가 함께 이런 영화일 수 있어 다행이다. 덕분이다. 고맙다. 우리는 이토록 느리자.




+ salem - redli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