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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내가 원하는 답은 종종 단 하나도 없었다,


많은 시간은 지나고 보면 항상 짧고 매우 예전 같다. 분리라는 건 그렇다.


며칠에 걸친 운전 끝에 미네소타에서 플로리다로 사고 없이 내려오고 이후 곧 이사를 했다. 나는 빈 집에 몇 가지 가구를 들이고, 부엌을 식기구와 조리도구로 채우고, 침구류를 사러 돌아다녔다. 나와 함께 한 달 정도 머무실 요량으로 한국에서 오신 엄마가 많이 도와주신 덕에 집 정리는 예상보다 수월했다. 나는 정식으로 합류한 실험실에서의 일을 계속 진행하면서 기말고사 하나로 겨울학기를 어렵지 않게 마무리하고, 예년보다 빨랐던 박사자격필기시험을 치루어내고, 여차저차 통과했다. 고작 며칠의 텀을 두고 봄학기가 시작되었고, 날이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했고, 엄마가 귀국하시기 직전의 주말에 엄마를 모시고 올랜도와 세인트 어거스틴에 다녀왔다. 남자친구는 친구와 함께 영화를 찍었다. 얼마 뒤 모국에서는 사달이 났다.


자격시험 이후 실험실과 수업을 바쁘게 병행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코첼라에 다녀오고, 그 바로 다음 주말에 미국 동부에서 플로리다로 놀러온 친구를 대접하면서 나는 이따금 어긋나는 기분도 느꼈지만 그럭저럭 가득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논문 주제가 좁혀지지 않은 박사 초반이라 그런지 연구가 아무래도 막연하고 막막할 때가 많지만 지금 당장 충실할 수 있는 것에 몰두하듯 충실하되 너무 쉽게 지치지 말 것이며 내 시선의 끝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것 하나는 잊지 않기로 한다. 느리게라도 멈추지 않고 꾸준하다보면 결국에는 가서 닿게 될 것임을 - 잘 모르겠지만 - 일단 믿는다. 확신과 불신은 앎의 유무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너무도 쉬운 이야기이다.


운전했던 추운 날들의 기록은 진행 중이다. 이제는 꽤 시차가 생겨버린 이야기지만 그때의 총체적인 기분은 여태 세세하게 보관하고 있다.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







+ mac demarco - chamber of ref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