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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존재

sketch 008-2




https://medium.com/science-scientist-and-society-korean/e9dfe744eb4b 

http://www.nature.com/naturejobs/science/articles/10.1038/nj7448-277a (원문)



"링크된 글, 재밌지?"


- 응. 찔리네...


"어떤 분야든 깊게 파고들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불편한 진실인 것 같아."


- '내가 언제든 틀릴 수 있음과 내가 가장 선호하는 이론조차 불가항력적으로 다른 이론에 의해 교체될 수 있음'이라는 이 말 이거, 진짜야. 비슷하게, 최재천 교수가 쓴 글 있었는데. 과학이야말로 가장 민주적인 활동이라고.


http://m.chosun.com/article.html?contid=2012061802163&sname=news


"정치적인 요소는 없어?"


- 있지 물론, 과학도 인간이 하는 거니까... 가령 A라는 이론이 현재 주된 이론일 때 더 맞는, 아니 덜 틀린 B라는 이론이 기존의 이론 A를 뒤엎기까지 꽤 오래 걸리는 것 같아. B 뒤에 정치적 파워가 있으면 시간이 좀 더 단축되겠고.


"그렇겠지... 그러고 보면, 과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과학을 절대적으로 믿잖아. 신 vs 과학 이런 것도 정말 쓸데없는 논쟁인데."


- 그건 어쩔 수 없는걸 꺼야.


"무엇인가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항상, 막연하게 그 분야에 대한 기대치에 맞춰서 가정하는 부분이 많아서일까."


- 응, 그래서 나도 저 글이 맞다고 생각하는 게... 나도 아주 처음 과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땐 과학이 내게 진실을 가르쳐 줄 거라고 믿었거든. 나도 과학으로 진실을 규명하고. 그런데 막상 하다보니까, 아니더라고. 과학은 우리가 뭔가를 테스트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것만 입증해줄 뿐. 뭐, 그런 이론과 실제의 괴리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으니까.


"응."


- ... 그런데 과학은 기본적으로 환원주의를 중심에 두고 있잖아? 결국엔 모든 걸 어떤 단위로 환원reduce할 수 있다고 믿는데에서 시작할 텐데. 만약 그런 거라면 이 꾸준함 어딘가에서는 이론이 실제에 가닿을 수도 있을 텐데... 예전에 우리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 한 적 있지? 현대물리학에서의 만물 이론theory of everything.


"응, 네가 말해줬어. 음... 건축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뭐, 이야기라기보다는 디지털 이론. 우리가 인간의 역사를 '글이나 말이나 이미지를 이용해서 어떠한 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본다면, 그 쟁점은 항상 '어떻게 정보를 압축시키는가'에 있었거든. 정보를 유지하고 해석하는 폭의 모두 인간의 능력 허용범위에 의해 좌우되니까.


- 그렇지.


"예를 들어, 유클리드나 피타고라스가 쓴 책들의 경우에는 그림이 없었대. 그림으로 그런 류의 정보를 신뢰도 높게 전달할 수 없었거든, 그 당시에는. 그래서 작도법을 글로 풀어서 설명했어. '정삼각형'이라는 개념을 글이란 정보로 저장하는 거. 여튼 그런 식으로 정보를 최대한 압축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게 중요했단 말이지... 건축을 봐도, 건물을 짓는 방법을 그림에 다 담으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압축방법이잖아. 건물에 대한 컨셉, 건설과정, 재료, 비용, 그 모든 정보를 종이 몇 장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 건축도 이런 식으로 통하는구나.


"함수를 생각해봐도, 그래프에 있는 모든 점의 좌표를 저장하는 기록방법이잖아. 엄청난 압축이지.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데이터의 크기가 더욱 커지고 있잖아? 컴퓨터는 그런 데이터를 그냥 그 자체, 010101011010 이 벌크로 기억하는데, 그런데도 인간의 본성은 아직도 정보를 환원하고 압축하고 간결화 하는데에 있어. 그래서... 그런 큰 용량의 데이터, emergence, 그들과 관련된 패러다임을 생각하면서 건축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가? 그런 테마로 심포지엄이 있었지, 이번 주말에...


- 하하,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였던 거야?


"90년대 디지털 건축은 들뢰즈Deleuze 없이 이해 못해... 아, 철학 전공 할 걸 그랬어.


- 들뢰즈는 영화이론에서도 중요한 사람인데. 아, 나도 4학년 때 과학철학 들을까 몇 번 고민하다가 에이 그냥 나중에 책 읽지 뭐, 하면서 다른 교양 수업 들었어. 후회하진 않지만, 그래도 과학철학은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니면 책을 진짜 제대로 읽던지.


"생각보다 마음 잡고 그런 책 읽을 시간 없지?"


- 시간 없다는 건 핑계고... 아니, 내가 고민하는 것들은 나 이전의 똑똑한 사람들이 먼저 다 고민하고 답을 내놨었더라고? 그런 걸 텍스트로 읽고 얼른 습득해서 그 다음 차원의 고민을 더욱 치열하게 했어야 시간 낭비가 안 됐을 텐데, 아쉬워. 물론 체험하는 것도 분명 남는 거지만.


"맞아, 아는 게 힘이야."


지금이라도 조금씩 더 읽어야겠어. 그나마 인지과학 공부하면서 익힌 것들이 도움이 되더라. 과학철학쪽 레퍼런스 삼기 좋은 것 같아. 비록 부전공밖에 안 되었지만 잘한 선택이었어, 인지과학 했던 거. 내 개인적 흥미와도 잘 맞았고 여러모로 도움이 돼. 꼭 지식적인 면을 떠나서라도, 생각하는 방식이라던가...


"그렇게 더 완전한 사람이 되어가는 거겠지? 아니면, 사치인가?"


- 의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