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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and the commercial caption read "fantasy, do not attempt,"


아프다고 생각했다. 금요일 아침 침대에 누워 고민을 하다가 병가를 내면서도 내가 정말 아픈 건지 아프다고 착각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우스운 일이지. 무엇이든 느끼기 이전에 생각하면 망하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이런다. 아무튼 전자로 결론 짓고 나니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주말에 걸쳐 내내 앓았다. 약기운에 어마어마하게 잤다. 약국에 가서 친구가 추천한 약을 샀다. 남자친구는 밥을 잘 챙겨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잘 먹고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끼니 거르니 말고, 죽 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스프 같은 거라도마치 내가 굶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잘 먹었다. 감자 스프를 데워 먹고 계란이 들어간 만두국을 해먹었다. 꾸역꾸역 먹었다. 코와 목이 부어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불을 두르고 숙제를 하고, 음악을 듣고, 웃긴 토크쇼를 보고, 전화가 오면 쉰 목소리로 대꾸하고, 그러다가 약을 먹고 또 잤다. 눈을 뜨자 온 방 안이 쨍했다.



감기가 덜 나아서 중간중간 죄송합니다,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고 기침을 했어야 했는데도 교수님은 싱글벙글이었다. 이야기를 좋게 마치고 악수를 했다. 막상 달라진 건 서류 한 장 밖에 없는데도 기분이 붕붕 떴다. 학교와 관련한 행정 처리는 끝났다. 내 생활만 안정지으면 된다. 좀더 활발하게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고민만 하고 있다. 이런 문제도 있고 저런 문제도 있다. 벅차다. 자꾸만 가파른 마음이 된다.


룸메이트가 커피 포트를 깨뜨린 바람에 냄비로 커피물을 끓이다가, 아픈 날 보았던 영화 <프란시스 하Frances Ha>를 생각한다. 많은 우리들은, 막연하게 기다리는 세금 환급과 애써서라도 살고 싶은 동네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힘차게 끓는 물을 본다. 적절한 처신과 상태 유지가 제일 어려운 거라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가스불을 끈다. 딱히 숨 가빠하지 않아도 일어날 일들은 일어날 텐데. 인스턴트 커피 알갱이가 가라앉듯 물에 녹는다. 발생이란 이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본질이야말로 평형상태equilibrium에 저항하는 것이지. 얘들아 사는 거 어렵지, 짜증나고 그렇지? 그런데 그건 다 너네가 너네의 바깥에 굴하지 않기 때문이야,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려는 이 세포들처럼. 안 그래? 안 쉬운 저항이 어디 있어? 그래서 원래 어려운 거라고 당연히 그런 거라고, 몇 년 전 세포생물학 교수님이 바지주머니에 손을 꽂고 힘을 뺀 목소리로 담담하게 해주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떠올린다. 굳이 안심하기 위해서였다.



+ the boats - it's not your fault (it's how air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