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간의 돛단배

"there shouldn't be this ring of silence, but what are the options,"


10월에 여기로 이사하고 나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러 바닷가에 간 적은 여러 번이지만 정작 해변으로 내려간 건 7월에 여길 방문할 때 한 번.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말을 들은 한 여자애는 그건 거의 범죄 수준인데 클로이, 했다. 지난 며칠은 축축하게 추웠다. 사흘 연속으로 바닷가에 놀러갈 때마다 사방에 해무가 가득했다. 마지막 날이었던 토요일에야 날이 풀렸다. 갈까? 가자. 남은 사람들끼리 망설임 하나 없이 신발을 벗어 들고 모래사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새벽이었고, 가로등은 너무 멀어 충분히 어두웠다. 안개까지 겹쳐 모든 것이 무채색이었다. 바다가 착각처럼 보였다. 서로는 보이지 않았다. 신발을 어디 한 곳에 모아두고 더듬더듬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다들 주저앉아 꾸준한 파도 소리를 들었다. 전혀 춥지 않았고, 아득했다. 누군가는 행복해서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왜 시간을 낭비해? 뻔히 알고 있으면서, 아깝게. 나는 삶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시간을 낭비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럼 낭비하고 있는 건 맞네, 라며 웃어오고. 하지만 우리 모두 낭비하는 게 일상 아닌가. 결국에는 음소거로 끝날 논쟁이었다. 고성이 오가는 편이 나았겠지만. 간혹 울지 말라는 말을 건네오기도 했다. 우습게도. 어차피 안 울고 있었다. 다만 괴로웠을 뿐이다. 내가 그간 예민해져 있던 모든 치부들을 낱낱이 들킨 것 같아서. 솔직함에 끊임없이 사과받는 모순이라니. 아무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모를 리가요, 내가 모를 리가요. 나를 향한 시선의 끝에 굳은살이 박혀있다는 게 어떤 건지 이미 잘 알고 있다. 꽤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점자라도 된 기분이 들고, 여러 방면에서 행간까지 읽혀진다 생각하고, 몸이 배겨나질 못한다.


밖으로 나와 숨을 들이쉬자 몸 안으로 안개가 딸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조금 걸어서 잔디밭에 대충 주차해둔 차를 찾았다. 시동을 걸고 와이퍼를 켰다. 새벽 다섯 시가 넘어있었다. 안개의 두께를 헤치고 운전을 했다. 도로에는 차가 그야말로 단 한 대도 없었다. 집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갈증이 났고, 지나친 대화들을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었다. 과속하고 싶었다. 눕고 싶었다. 자고 싶었다. 우리가 아무리 왈가왈부해도 모든 건 어쨌거나 '-고 싶다'와 '-고 싶지 않다'로 나뉘는 것이었다.



+ lcd soundsystem - someone gr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