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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잠들기 전 문득 고맙다는 말을 듣고 나는 또 뭘 잘못한 걸까 생각한다,


동기 언니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내부가 복잡해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두어 번 와본 적이 있었어서 미로 같은 골목골목이 살짝 기억날 것도 같았지만 아닌 척 일부러 헤맸다. 더군다나 가로등이 흐려서 몹시 어두운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거기 같았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차가 약간 울컥댔다. 차에서 내리면서 믹서기에 담겨 있던 와인을 쏟았고, 이사하면서 뒷좌석에 쌓아두었던 두루마리 휴지로 바닥을 닦았다. 전조등을 끄지 않고 꾸물댔더니 근처의 개가 한참을 짖었다. 언니한테 미리 받은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 부엌의 불을 켜고 보니 믹서기에는 와인에 불어터진 딸기만 잔뜩 남아있었다.

어젯밤에는 한참 짐을 싸다가 힘들어서 잠깐 드러누운 사이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해가 뜨기 전에 눈을 떴다. 그 와중에 추워서 옆에 있던 겉옷을 이불처럼 덮고 잔 꼴이 우스웠다. 짐을 마저 챙기고 쓰레기를 내다버리고 약간 남겨둔 음식으로 요기를 하는 사이 날이 아주 밝았다. 룸메이트는 비행기를 타러 먼저 집을 나가면서 너의 모든 일에 행운을 빈다,고 포옹 너머로 말했다. 몇 시간 뒤 그 애로부터 날씨 때문에 시카고 공항에 갇혀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변명을 찾다가 당장의 결여,와 같은 소리를 한다. 무엇이 대체 무엇이? 퇴근길 따분하게 운전하다가 고개를 살짝 들면 모든 시야는 하늘 그 하나만으로도 홍수가 나는데 뜬금없는 결여라니 나는 과연 어떤 근거로? 모를 노릇이다. 불만을 해대는 것이 아무래도 소질과 적성에 맞는 모양이다. 설령 옳지 않을지라도. 그러나 늘 옳을 필요가 있다고 누가 가르친 거지?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 가르친 건 아니다. 내가 멋대로 배운 거지. 주체를 나로 두면 남을 힐난할 필요가 없어 편한 삶이다. 지내다보면 이런 요행이 생긴다. 어떤 것들은 말은 되지 않더라도 이야기가 될 수는 있다. 말과 이야기는 각각의 개체니까. 물론 이건 최근에야 알았다. 나는 여태 겹쳐오는 부분만 알아봤다. 미리 알았으면 덜 괴로웠겠지. 말이 안 되는 건 이야기가 되게 하면 된다(뭐가 된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이게 내가 수월해지는 방법이다. 이 또한 요행이겠지만,

지난 월말 친구들과 둘러 앉아 시린 손을 비비면서 사케를 돌려마실 때 옆자리의 친구는 나를 가르키며 얘를 봐 얘처럼 하라구 얘는 적어도 자기 감정에 솔직하잖아, 했다. 당황스러웠고, 여러 방면에서 부끄러웠고, 길게 궁금했다. 나를 어떻게 재단하면 그런 치수가 나오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른 친구들의 농담 사이에서 그 말을 놓친 척 하고는 요란하게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귀가해서는 한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그나마 확실한 네 가지가 있었는데 (1) 버릴 경험 하나 없다는 꼰대 같은 말은 절대 틀리지 않았지만 (2) 나더러 귀속하라고 하면 납득하기 힘들고 (3) 나 또한 천천한 마음이고 싶지만 (4) 오래도록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거였다. 침대에 모로 누워 벽을 마주하고는 나는 틀리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여전하다.


+ peter broderick - a glac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