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간의 돛단배

제출하지 못한 기분이 쌓여갑니다 나는 얼마나 멸망할까요,


쓰던 글을 여러 번 지웠다. 가득하게 할 말이 없다. 마음이 와글대는 걸 빼곡함이라 착각했다. 껍질처럼 살고 있는 모양이다. 조금 비참하다. 화산재 같은 눈이 내리던 몇 주 전 상수에서 만난 친구는, 이 모든 행운과 기회의 맥이 끊어졌을 때 내게 남아있어줄 것들은 - 만약 있다면 - 과연 무엇일지를 염려하는 나에게 커리어 바닥을 찍고 있는 본인의 근황을 풀어놓으며 그래 그런 파도라도 꽉 잡고 있어, 라고 했다. 결국엔 다 흐름 타고 보는 거라며. 그렇나? 그렇다. 그러나 아무래도 조금 비참하다. 뚫려가는 달력을 본다. 미국으로 돌아온지 겨우 열흘이다. 체감시간은 한 달이 넘는다. 시차 때문에 골목처럼 헤맨 밤이 너무 많아서 그렇지. 발음도 예쁜 1월,의 절반이 갔다. 그러나 애초에 계획 없이 시작한 새해다. 물론 언제나처럼 소원은 많이 안고 있었지, 내 욕심은 태생적이니까. 어떤 소원 빌었어? 네가 물었다. 그냥, 좋은 것들을... 사실 많지 않으니까, 좋은 것들이라고 해봤자. 이러면 내 욕심은 다소 희석되나. 내가 아무리 꾀부려도 행간에는 아무것도 없다. 헛웃음이 나온다. 보고 싶다고 말하면 진짜가 될까봐 그러지, 못했다. 역시나 별 게 다 두렵다.



+ snowbird - porcel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