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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우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할을 할 거야 하지만 내가 꼭 흰 돛을 보게 하자,"


땡스기빙에는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다른 짐과 함께 조수석에 두고, 진하게 내려 텀블러에 담은 커피를 마시면서 남쪽으로 차를 네 시간 정도 몰아 친구 집으로 갔다. 출발할 때만 해도 은근 추워서 입고 있던 스웨터가 고마웠는데 친구 집은 내가 있는 곳보다 한참 남쪽이라 그런지, 어렵지 않게 찾은 친구 집 앞에 주차를 하고 마중 나온 친구를 껴안을 때 옷을 밀치고 들어오는 열기를 느꼈다. 친구는 운전 한 달 반 만에 장거리를 운전해온 나를 신기해했고("운전 7년차인 나도 제일 오래 운전한 게 몇 달 전에 세인트루이스랑 시카고 왕복한 건데") 플로리다 주립대를 다니는 친구 동생은 아쉬워했다("운전해서 오는 거 알았으면 카풀할 걸").


삼 년 전에도 한 번 간 적 있는 친구 조부모님 댁에서 친구의 친척들이 제각각 마련해온 음식을 골고루 먹었고, 사람들도 내가 구워간 호박 쿠키를 몇 개씩 집어먹었다. 친구 가족과 함께 다시 친구 집으로 돌아가면서 야자수들, 거기에 가득한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조명, 그 아래를 지나는 반팔 반바지의 사람들, 그런 것들을 지나쳤다. 지난 모든 땡스기빙은 한 번도 빠짐없이 추운 곳에서 눈이나 칼바람을 맞으며 보냈기 때문에 따뜻한 휴일이 좋은 만큼 어색하기도 했다. 친구 집 데크에서 물이 흔들리는 걸 보고 풍경風磬 소리를 들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 방으로 올라가 친구 부모님이 마련해준 에어 매트리스 위에서 이불과 베개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는 창문 안팎으로 눈이 왔다.






나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자꾸만 너무 덥다고 불평하고 너는 웃다가 나는 추워, 가만히 말하고.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졸린 눈을 비빈다. 순간의 기울기가 견디기 힘들어 침대 위에서 몸을 말고 숨죽이고 있다가도, 열은 가만히 두면 마치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걸 이내 기억하고는 어깨에 힘을 뺀다. 최적의 궤적으로 너에게로 간다.



+ ketil bjørnstad - the sorrow in her e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