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장 보통의 존재

청춘10


진짜 아프면 들추어보지도 않는다고.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 없는 건데,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입을 떼었다. 나는 그 다음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내가 견뎌야 할 중력을 직감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애초에 죽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고 생각해. 바꾸어 말하면, 살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 질문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들켰을 것이다. 몇 초 가량이 지났다. 우리들 중 외치는 쪽은 없었다. 다시 몇 초 가량이 지났다. 소란의 부재도 지났다. 가끔 숨이 가쁠 뿐이었다. 이후 그 전화는 연초를 언급하지 않았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이건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 없는 건데. 추위가 감당이 안 되어 차라리 쇠를 든 순간이 있었다. 허락은 없었다. 그게 다행이었냐면, 그래요, 다행이었으리라 믿는 편이 쉬우니까요. 교수님은 손을 모으고 학문적인 어조로 증상을 읊었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상당히 흥미롭다고 했다. 그렇게 해가 자꾸 떨어지고 있었다. 누구나 살다 보면 함부로 쓰는 어휘가 생긴다. 혼란스러워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요, 고요. 나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불필요하게 많은 것을 기억했다. 서로는 등을 맞댄다. 마음이 미워져서 나는 기억나지 않는 척 한다. 이제서야 나를 이해해? 이해만 하는 거야. 그게 더 비참해. 나도 알아. 기억나? 아니. 나도 기억 안 나. 벽지에서는 덜 마른 풀 냄새가 풍겼다. 먼지가 함께 젖어갔다.

누군가 그 어떤 대사도 꺼내지 못하는 찰나가 오고야 만다. 계절은 원래 겹치지 않는다. 저는 살아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