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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부산에서 보낸 일주일 채 못 되는 나날들은


부산에서 보낸 일주일 채 못 되는 나날들은 굉장히 여유롭게 지나갔다. 잠을 길게 자면 잘 수록 숙면은 못 하는 대신 매우 신기하고 기이한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나는 빈둥거리며 상대적으로 엄청난 시간을 자는데에 소비했다. 안 보던 텔레비전도 꽤 보았고 부산 친구들도 만났고 오랜만에 친척들도 뵈었고 책도 조금(그렇다, 아주 조금) 읽었고 영화도 보았으니 그렇게 헛되게 보낸 일주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겨울방학을 이용한 재충전'을 부산에서 한 것 같다. 서울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재충전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부산의 번화가는 서울의 번화가보다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든다. 규모가 작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는데 왠지 모르게 더 친근하고 편하다. 옷을 얇게 입고 서면에 나간 날 나는 숄 수준으로 길고 넓은 목도리를 히잡처럼 두른 채로 낄낄대며 바람을 피해다녔고 나는 약간 미친 여자처럼 보였을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 너무 기분이 좋았다. 옆에 있던 철현이는 이방인같은 내 모습이 쪽팔렸는지 나와 일행이 아닌 척 하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만약 철현이가 나처럼 목도리를 히잡 마냥 두르고 다녀서 내가 좀 창피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창피함을 무릅쓰고 같이 다녀줄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섭섭해했지만 그래도 부산에서 보내는 연말은 집처럼 아늑했다.

하지만 요 며칠 꽤 많은 친구들이 하나둘 미국으로 떠나기 시작했고 나는 나 또한 겨울방학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두려움에 떨며 남은 겨울방학을 알차게(라고 해봤자 친구들 만나는 게 대부분이겠지만) 보내려고 열심히 구상 중이다. 예를 들어 찬서랑 찜질방에를 간다던가.

아직 나는 내가 스물 한 살이라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