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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존재

빛이 8광년만큼의 거리를 달리고 나면


관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에, 팔 년은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꽤 오래 왕래가 없던 서로에게 같은 날 여덟 시간의 텀을 두고 연락을 취하고. 나는 잊지 않고 연락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고 그 애는 자기 이름을 기억해주어서 고맙다고 하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근황을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고 공유했던 여러 순간들을 기억해내고. 시덥잖은 이야기로도 몇 시간이고 웃고 떠들고 그 사이사이에 가끔 있는 침묵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그 애는 왠지 무엇인가 너무 우습다면서 계속 웃고 나는 뭐가 그렇게 웃기냐면서 따라 웃고. 그 애는 겨울인데도 햇빛이 강해서 따뜻하다고 했고 나는 꼭 그래서라기보단 그냥 마음이 따뜻했고.

내가 스물 일곱이 되면, 너와도 그럴 수 있을까. 그때의 나보다 여덟 살만큼만 더 자라면, 그럴 수 있을까.

여덟 해라는 충분한 시간이 유유히 흐르고 나면 녹록치 않았던 껄끄러움이 봄 햇살에 겨울 얼음 녹듯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너와 나는 다시금 아무렇지도 않게 시선을 맞출 수 있을까. 그 어떤 인위적인 노력도 필요 없이 이성 대신 감성으로 호흡하듯 대화할 수 있을까. 너와 나 사이에서 미칠 듯 팽창했던 무한한 우주가 비로소 수축할 수 있을까. 엉키었던 초끈의 시작과 끝을 찾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여덟 번 공전하길 기다리는 것,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데. 할 수 있는데.

설령 침식된다 하더라도 나는 묵묵히 시간에 잠길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