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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존재

청춘09


K 오빠는 우리가 왜 낭만을 잃은 세대인가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S는 우리는 사실 너무나 곱게 자라왔고 앞으로도 너무나 곱게 생활할 거라고 했다. 나는 다 맞는 말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서 내 낭만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뭐냐고 나에게 물었다. 자꾸만 생각나는 사진이 있었다. 지난 달에 뉴스기사를 훑다가 본, 등록금 동결 시위 사진. 친구의 옛 여자친구가 삭발을 한 채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 안에 뭔가가 있었다. 괜히 뜨끔했다. 올해 초 그 애가 술을 따라주며 한 말이 허공을 맴돌았다. 분노하라고. 분노하면 지키고 싶은 것이 떠오르기 마련이라고. 그래서 나는 그게 경험과 비경험의 차이인가 싶다. 날 스친 것들은 한가득인데 관통하는 그 무엇은 없었다.
난 정말 제때 겁만 먹고 낮은 것 앞에서 눈 가리고 곱게 자라왔다.

작년 여성학 입문 수업 내내 폐지될까 말까에 대해 이야기했던 DADT는 작년 말 오바마의 펜 끝에서 결국 폐지됐다. 일 년 내내 같이 스페인어를 듣고 있는 애는 졸린 눈을 비비며, 자기 친구가 휴학하고 리비아로 돌아가는 날 같이 밤을 새주었다고 했다. 그 젊은 시인은 자신의 뒤늦은 시작을 지키기 위해 1년 반을 방황하며 앓았다고 썼다. 다들 지키고 싶은 걸 지켜가고 있거나, 지키려고 하고 있다. 난 그래, 하면서 얌전히 앉아 맛있는 거나 먹으며 공부만 한다. 뭘 위해? 이 아름다운 학문인가, 내가 지키고 싶은 건?  아니면 고등학교 친구들과 월요일 아침마다 나란히 서서 수 차례 읊고 읊었던, 조국? 그게 내가 지키고 싶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하나? 사실 거창할 필요도 없는데. 모르겠다. 모르겠어서 난 언제까지나 손톱만 물고 있다.

내가 제일 두려운 건,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고작 나에 대한 남들의 기대가 될까 하는 거다. 그렇게 시시한 문제라면 난 지금 이걸 모두 놓아도 좋다. 놓아야 한다.

우리는 사유(私由)가 너무 많아 사유(思惟)할 시간이 없다. 겉돌지 말고 안으로 깊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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