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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존재

청춘01


사람들을 사귀고 알아갈 때에 고려해야하는 사항이 너무 많고 복잡해 골치아픈 우리네의 삶에서, 너와 나의 관계가 서로에 대한 신뢰와 기대 그리고 희망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름대로 굉장한 위안이 된다. 그래서 나는 네가 "적어도 너는-"이라고 운을 띄웠을 때 추웠던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집단의 사람들이 모두 이 모양 이 꼴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너는, 너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일조량이 적은 겨울이라 멜라토닌 수치가 바닥을 쳐서 우울해 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문자가 왔다. "나는 어린게 아니라 약한거야."

나는, 어리지 않아. 나는, 약해.

어리다기보다는 약하다는 것.

네 선택은 너의 결점을 미성숙(未成熟)으로 정의하기보다는 차라리 나약함으로 정의하는 것. 지하철 안에서 너는 헌 책들이 담긴 비닐봉지를 품에 안은 채로 서걱거리는 비닐봉지 소리에 맞추어서 내 짧은 말들을 속으로 여러 번 곰씹었나보다. 그런 쓸데없는 내 사견을 네가 마음에 걸려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싫었던 나는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하나둘 끄집어 올려보았다.

사실 어리다는 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 나도 너처럼 어린데 뭘 그래, 니가 어리다고 해서 나나 다른 사람들이 널 금세 싫어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어리다'라는 형용사는 아직 어느 정도의 발전의 여지가 남아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너는 그래도 그게 싫었나 봐, 하지만 동시에 너의 유약함을 인정한다는 건 참 대단히 용기있는 행동인 것 같아, 그래서 나는 거기에 작은 찬사를 보낼게, 왜냐하면 나 같은 경우는 겁이 많아서인지 이따금 나의 약한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거든, 아니 이건 내 이야기고, 어쨌거나 뭐 조금 서툴면 어때, 하나하나 발전해나가면 되는 거잖아, 어떻게 사람이 모든 것에 완벽할 수 있겠어, 더군다나 우리처럼 갓 성인이 된 새파란 아이들이 말이야, 나는 우리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보며 지금의 어린 우리 모습을 비웃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슬프거나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아, 모르겠어, 어쩌면 너는 정말로 어리지 않은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나는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한거야, 너무 신경쓰지는 마, 주관은 어디까지나 주관에 불과할 뿐이잖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손톱을 깨물고 있었고 급히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시인이 아니라서 그 긴 말들을 효과적으로 압축하는 데에는 재주가 없었으므로 굳이 힘들여 답장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