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나 건강하게 살고 있는 걸까 어제
나는 얼마나 건강하게 살고 있는 걸까?
어제 늦저녁에는 비가 올 것처럼 후덥지근하던 길을 걸었다. 수업 갈 때 핸드폰을 들고 가지 않은 탓에 늦게 확인한 부재중 통화가 찍혀 있었고 다시 전화를 걸어 통화 연결이 된 순간 하늘에서 번개가 잇달아 번쩍였다. "엉망인 방에 폭탄이 떨어진 것 같아,"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영화처럼 하늘이 잘은 천둥소리로 낮게 끓었다. 나는 자꾸만 "뭐? 왜?" 라며 되묻기만 했고 그 애가 "훼손"이라는 단어를 담담하게 발음할 때 나는 그 애가 정말로 훼손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 애도 어느 정도의 홍역을 치른 거겠지 - 하지만 "어느 정도"라는 수식어를 간단히 붙이기에는 그 애가 감당할 시간이 너무 무겁다. 그건 그 누구도 나누어 짊어질 수 없는 시간이다. 아무쪼록 짧게, 짧게 견디길 바랄 뿐이다.
전화를 끊고 얼마 있지 않아 미친듯이 비가 쏟아졌다. 비는 꽤 오랫동안 세차게 내렸지만 유기화학 시험이 끝나기 전에 멎었다. (시험을 치는 여자친구를 위해서 우산을 가지고 마중 나온 Derek은 "이거 뭐 내가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잖아, 비가 계속 와야 내가 좀 멋져보이고 그럴텐데"라며 투덜거렸다.) 그 모습과 흡사하게도 유기화학 첫 시험을 본 아이들이 교실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순간 처음으로 여름에 유기화학을 들은 것이 약간이나마 기뻤다.
몇 시간 후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비는 다시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하루 종일 가지고 다녔던 청록색 우산을 드디어 쓰고 걸어가면서 비가 오는 날에는 스프링쿨러를 멈춰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걸었다. 가는 길에, 한 달 전 정도에 희상에게서 받은 푸른새벽 1집을 드디어 들었다. 참, 기분 좋은 한숨 같은 음(音).
그런데 푸른새벽도 푸른새벽이지만(푸른새벽은 원래 알고 듣고 있었지만), 요새 Ratatat에 말도 안 되게 푹 빠져있다. 요 이틀 사이에 Ratatat의 Breaking Away를 백 번 정도, 그냥 홀린 듯이 들었다. 지금도 아이팟이 열심히 반복 재생 중이다. 가사 하나 없고 몇 안 되는 멜로디가 반복되는 곡이지만 이렇게 사람 마음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언어학 시험을 보고 오늘은 통계학 시험을 보고. 원래 월요일에 결과가 나왔어야 할 언어학은 교수님이 주말에 소풍을 가시는 바람에 채점을 다 못 하셔서 내일 수업에 가면 결과가 나와있을 것이고 통계학은 교수님이 은근 뒤통수 살짝 쳐주셨지만 결과가 좋기만을 바랄 뿐이다. 목요일에는 겁 밖에 나지 않는 물리 시험이 있고 다음 주 수요일 목요일에는 연달아 생물 시험과 심리학(Sensation & Perception) 시험이 있다. 이번 주말에 친구 생일 파티도 있고 화학 프랫 이벤트도 있지만 빈틈없이 공부하고 날 시험하는 저 시험들을 다 지나고 나면 며칠 동안은 좀 살 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