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ie awake, dreaming of the landscapes in the rain,"
각종 학교 서류를 처리하고, 모르는 도시에서 무턱대고 모르는 버스에 올라 관공서에 다녀오고, 첫 로테이션 연구실을 정하고, 며칠 머뭇대다가 숙소 계약을 연장하고. 그러면서 생애 최악의 시차증후군을 겪었다. 그래도 이제 건강보험만 고르면 내가 혼자 알아서 해야 할 것들은 다 끝난다. 정착의 초반이 이렇게 지난다. 나는 이렇게 지낸다.
지내는 곳 특성상 부엌이 없는 건 어쩔 수 없이 아쉽다. 물론 모든 걸 누릴 순 없겠지만, 요리해먹던 세월이 몇 년째이다보니 아쉬움을 쉬이 숨길 수 없네. 그 와중에,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불편해서 어떻게 그러고 사냐(여자)', 또는 '어차피 몇 달 안 있을 거니 그냥 밥 사먹고 지내라(남자)', 성별에 따라 양분되는 양상이 신기하다. 며칠 전 아는 분의 도움으로 장을 보러 갔을 때에는 불을 써서 조리를 할 수 없는 판에 어떤 식재료를 사야할지 몰라서 몇 가지만 어설프게 챙겨나왔다. 저녁으로 허머스에 꼬마 당근을 하염없이 찍어 먹고 있다고 했더니 친구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요리하지 않아도 잘 먹고 지냈지, 그런데 여긴 기숙사 식당이 없어.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다.
친절한 사람들로부터 밥이나 커피, 아이스크림 같은 걸 얻어 먹으면서, 아직 처음이니까 쉬엄쉬엄해, 이런 말을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바쁠 것이 없다. 다만 새벽에 잠에서 깰 때마다 침대가 너무 넓어서 당황한다. 첫날부터 일부러 침대 남는 자리에 가방이나 책, 마른 수건 같은 물건들을 늘어놓고 잠들었다. 주변이 와글와글했으면 좋겠다. 시차만으로도 벅찬 지금 결핍까지 더불어 견디기에는 내 마음이 별로 건강하지 않은 것 같아. 예전에 내가 흘려 말한 적 없나, 나도 종종 공간을 견디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국경을 지나 언어를 바꾸고 지난 두 달간 잘 사용하지 않던 단어들을 발음하면서, 벌써 지난 달이 되어버린 지난 주를 떠올린다. 가끔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왠지 둘 다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길래 대화를 멈추고 물어보기도 했다. 우리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우리의 이야기를 남의 언어로 구현해보는 작업이라니. 뉘앙스 때문인가?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건 핑계에 가깝지. 외국어로 대화하면 약간은,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기분도 들었으니까. 우리는 서로에게서 그렇게나 가까이 있었는데 정작 우리 품안의 이야기와 우리 사이에는 어떤 거리가 생겨났잖아. 단어와 단어 사이의 당연한 띄어쓰기나 책장과 책장 사이의 아늑한 부피처럼, 나쁘지 않은 적당한 틈 같은 것들이. 12포인트 Courier 폰트로 적힌, 우리의 동명이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소리내어 읽는 것 같았지. 이건 우리가 함께 쓰고 있는 영화 각본 같은 거라고 네가 설명했던 것처럼. 견디고 싶어지는 공간이라니, 신기하지만.
여권에 어느새 하나 더 찍힌 푸른 도장을 넘겨보다가, 이국의 사람들 앞에서 내가 지녀온 이야기를 외국어로 풀어가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 이야기의 전개 때문에 익숙했어야 할 모국에서 기분 좋게 낯설었던 시간들을 생각해.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물어보지. 새로운 곳에서의 나는 지금 나라는 파사드를 직조하고 있는 걸까. 그러네. 온몸에 시차를 덕지덕지 묻히고서도 순식간에 그러고 있네.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서 재미있네.
+ mint julep - avi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