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돛단배

지내다보면 지날 수 있는 이런 이야기의 방식을 설명 대신 약속해,

chloed 2013. 6. 29. 02:30


미국을 떠나던 비행기에서 잠이 오지 않던 나는 머리 위의 독서등을 켰고 굉장히 오랜만에 김경주 시집을 열자 펼쳐든 페이지에서


"처음으로 내가 입에 담배를 물려 준 여자가 있습니다"


-라는 낯익은 구절이 눈에 들어왔고 순간 나는 늦은 오후와 저녁과 한밤과 새벽과 하루를 통과해 봄비가 내려 옅은 흙냄새가 나던 이른 아침 공기 거기에 젖어들던 담배 냄새 그것들과 함께 동이 트던 공원 옆길 거기에서 조깅하고 있던 내가 모르는 사람들 혹은 내 머리를 어색하게 쓰다듬던 피곤한 체온들 역시나 끌어안던 빈 어깨들 내 방을 벗어난 사거리와 고속도로와 주차장과 공항의 마지막을 순서대로 생각하다가 이제부터라도 조금은, 흐르는 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래 아무래도 그게 좋겠다 다짐하고는 비행기 특유의 소음을 못 이긴 척 몸을 접고 패배한 것처럼 들었는데,


그러다보니 (또는,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끝맺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한다. 꾸준히 떠오르는 몇 개의 광경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앙드레 지드 『좁은 문Strait Is the Gate』의 마지막 문장, 다르덴 영화 마지막 장면들의 대부분, <4개월, 3주... 그리고 2일4 Months, 3 Weeks and 2 Days>의 마지막 롱테이크. 관객이 내러티브를 떠나도 여전히 살아남아 계속 지내줄 것만 같은 낌새에 나는 넉넉히 위로받고. 나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끝맺으면 비슷한 윤곽으로 남을 둘러쌀 수 있지는 않을까, 유사한 풍경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쓸데없이 그런 것들을 고민한다.


지금 여기를 견고하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비롯한다.


한낮의 어떤 시간이 되면 아파트 공원 바닥에는 나뭇잎 사이를 통과한 햇빛이 보케처럼 방울방울 맺힌다. 그게 참 사진 같고 액자 같아서, 그 위를 지날 때마다 매번 속이 울렁거린다. 초록색 은행잎은 아무리 바라봐도 기이하다. 잘못 태어난 것 같이 생겼다. 올해는 벚꽃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아스팔트는 버찌즙으로 제멋대로 얼룩덜룩하고. 지하철역으로 가려고 모퉁이를 돌다가 마주한 꼬마들은 화단 앞에서 화기애애하게 수국을 쥐어뜯고 있었다. 사방에 보라색 꽃잎이 날렸다. 오늘 너희들의 체육복은 평화롭네요. 나는 가령 낮이 점점 짧아진다는 게 몰래 야속하네요. 어쨌거나 아무런 대답이 없네요. 하긴 물어본 사람도 없었으니까.


핸드폰의 전원이 꺼지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는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한 아주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는 눈동자가 흐렸다. 아기는 뿌연 눈으로 열심히 허공을 쫓으면서, 아주머니 옆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의 부채를 움켜잡았다. 우리 모두는 뭔가를 움켜쥐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잖아, 여튼 진화의 산물이라니까? 엉엉 울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 oliveray - growing waterw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