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돛단배

"details of your look, like your touch, killing me by shoot,"

chloed 2012. 7. 18. 15:59


타협과 협상은 다르다. 나는 전자만 능숙하게 할 줄 알고 후자를 해내야 할 경우에는 많이 버벅댄다. 조용하게 협상하는 사람들이 무섭고, 부럽고, 다시 무섭다.


오늘은 일하던 도중 남는 시간에, 박사님과 함께 아는 언니의 박사 학위 논문 심사를 보러 옆 건물로 갔다. 언니는 발표 후 감사의 말을 전하며 감정이 북받쳤는지 조금 울었다. 몇 달 전 졸업식 때 더위에 허덕이던 나와 예진이가, 박사 학위 받는 사람들의 가운과 모자를 보고 감탄하며 박사 할 맛 나겠다고 농담을 할 때에도 언니는 박사 후드를 뒤집어 쓰다가 울컥 울었다고 했다. 고생했던 기억이 쏟아지듯 다가온다고. 우리 건물로 돌아가면서 박사님은 너도 몇 년 후 발표 끝나고 엉엉 우는 거 아니냐고 하셨다. 글쎄요, 그건 일단 대학원 들어가고 나서 생각해도...


멜라토닌을 먹을 때에는 병에서 두 알을 꺼내 혀 밑에 넣는다. 그러면 인공적인 딸기향이 입에 천천히 퍼지는데 그 맛이 참 별로다. 하지만 이내 노곤해지는 걸 느낀다. 지난 토요일에 너무 많이 자서 그런지 그저께와 어제는 잠들기가 어려웠다. 잠에 막 빠져들 때면 잠에 빠져드는 내 신체의 변화가 궁금해져서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러면 다시 잠이 달아나는 거다. 어쨌든 지금도 노곤하다. 그리고 어지럽다. 방도 어지럽다. 물건들이 사이좋게 몸 섞고 있다. 읽고 있는 책과 읽으려고 하는 책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새 책들을 읽는 와중 이이체 시집을 다시 읽고 있다. 세번째다. 그 시집을 처음 읽을 때에 나는 손등에 링거를 꽂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두번째로 읽을 때에는 도서관 카페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를 본 은지가, 자기가 일하는 동아시아 도서관의 주문 리스트에 그 시집을 올리겠다고 말했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실외투증후군」이 조금은 야한 시로 읽힌다. 지금 이 순간 잠이 나를 밀고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노래 부르고 싶다.



+ sébastien tellier - l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