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ly trees, i'll give them company,"
아쉬워한다. 오래 전 빌려주고 여태 돌려받지 못한 책. 귀찮아서 미룬 손빨래.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 실험. 회복하고 싶은 관계(와 회복하고 싶지 않은 관계). 내려 받지 못한 앨범(과 괜히 내려 받은 앨범). 사지 못하고 뒤돌아야 했던 양초. 쉽게 깜박이는 전등. 함께 갈 사람이 없는 공연. 물이 있는 곳에 갈 수 없는 생활. 이사한지 한 달이 넘어가는 이 집은 냉온방이 공짜라 굳이 에어컨을 끄지 않는다. 퇴근해서 더운 길을 오래 걷고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듯 내 방문을 열었을 때 변함없이 웅웅거리며 공기를 뿜고 있는 에어컨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를 위해 버텨주었다는 생각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대 위에 누워 있으면 천과 살이 붙는 공간이, 내가 열을 억지로 가두고 있는 것처럼 금세 더워져서 성가시다. 이쯤 되면 노력은 필요마저 없어진다. 바깥은 너무 쉽게 40도를 넘어서 나는 종종 몸이 더워져 죽을 것 같다. 유례가 없게 여긴 거의 사막이다. 피부가 병든 것처럼 아프다. 출근해서 도시락을 냉장고에 넣고 나서는 섭씨 4도로 유지되고 있는 냉방실에 일단 뛰어들고 보는데, 한기로 가득한 그곳에 한참을 있어야만 피부 밑이 서늘해진다('서늘하다'라는 단어는 참 서늘하다). 전신이 뜨거우니 찬 기운은 대충 스며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부탁이니 나를 마음대로 비집고 들어와줬으면 한다. 보다시피 나는 틈이 참 많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텐데. 네가 내 가슴을 열고 들어와 내 심장을 주무르는 상상을 했다고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보고 수화는 왜 무언가를 쓰다 말았냐고 물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몇 년 동안 조금 귀찮아졌나 싶다. 그 와중 대충 살아도 좋겠다고 오래도록 생각했다. 동의를 구하지 못할 것 같아 묵히기만 했던 열망이다. 지금도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나는 이제 실패도 마음대로 못 한다. 당신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생각이 나를 덜 외롭게 해주지는 않는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도태를 원한다면 필히 허락을 받도록 설계되었다. 그 레퍼토리는 형식에 불과하며 끝까지 승인이 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이래서 객관만으로는 나를 지탱할 수 없는 거다. 얼마 전 지갑에 마구 쑤셔넣은 영수증을 정리하다가 오래 되어 너덜너덜한 쪽지를 찾았다. 3년 전 여름 쓰러지고 있던 나를 붙잡으려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쓴 한 문장이 아직도 있었다. 그때 경영대 건물 2층의 닫힌 공간을 채우던 탁한 공기, 온도 조절기에서 나던 낮은 기계 소리, 그리고 내 혼잣말을 옆방에서 숨죽여 듣고 있던 남의 침묵이 기억난다. 우리는 네모난 창문 너머 서로를 마주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많이 변했던 것도 같다. 몇 년 동안 그 쪽지는 낡아 아주 변색되었다. 그 바랜 종이를 보며 나는 그제야 세월의 경로를 체감하고 있었나보다. 나는 거기에 심지어 날짜마저 적어 넣었던 것이다. 지갑을 다시 닫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어제 오후에는 그가 대화 도중 자기 월급이 직장 재정 사정에 의해 절반으로 삭감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가 웃길래 나도 걱정없이 웃었다. 나는 너무 수동적이라 뭘 어떻게 해야 옳을지 고민했다. 존재가 오래도록 잔류하기를 몰래 바랄 뿐이다. 하지만 바란다는 건 이기적으로 유약한 기능이다. 저녁부터는 여름 하늘이 천둥 번개로 요란이었다. 나는 차 뒷좌석에 앉아서 더운 번개를 구경했다. 정전기는 나뭇가지처럼 너무 선명했고 나는 그게 시덥잖은 거짓말같다고 생각했다. 다들 거짓말의 미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꾸만 실패를 실패 아닌 걸로 위장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실패를 실패로 보았으면 한다. 차라리 그냥 다함께 패배했으면 좋겠다. 단 한 명만 나와 함께 정체해준다면 오래도록 고르게 또한 형편없이 행복할 것 같다. 솔직함은 비참하게나마 우아하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맹세코 나는 이런 수준의 맹세만 여러 번이다.
+ soffie viemose - to the woo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