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 등록을 하고는 아프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 Nils Frahm - More /
심포지엄 등록을 하고는 아프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집 앞 카페에 도착해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커피를 사려고 줄 서있던 친구가 나를 발견하고는 대뜸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왜 양복을 입고 있냐고 묻는 나에게 그는 심포지엄 진행요원 카드를 꺼내 보이며, 오늘 아침에 참가자들 체크인 하는데 오전 세션에서는 딱 너만 안 왔더라고 했다. 종이에 적힌 네 이름을 가리키며 이 사람 아냐고 서로에게 묻고 있는 다른 진행요원들에게 나 너 안다고, 너 전화번호 있다고 할까 하다가 무슨 일 있나 싶어서 말았지,라고 말하고는 혀를 끌끌 차며 웃었다. 머쓱해져서, 아파서 못 간 거라고 대답하는데 마침맞게 기침이 요란하게 연달아 터져주었고 내 주장의 신빙성은 올라갔을 것이다. 기침을 멈추지 못하는 나에게 친구는 옷을 좀 더 두껍게 입는 게 좋지 않겠냐며 커피값을 계산했다. 나는 이미, 4월 옷차림 치고는 충분히 두껍게 입고 있었다.
친구가 떠난 이후 나는 숙제 때문에 환상지 현상phantom limb에 관한 내용을 써내려가고 있었는데 창문 밖으로 손목 아래 부분이 없는 거지가 지나가고 있었다(정말, 없어도 아파요?). 오늘은 졸업생들 모교 방문 주말인데다가 어제에 비해 날씨도 지나치게 좋아서 카페는 사람들로 터져나갈듯 했고(커피를 사려는 사람들의 줄은 심지어 건물 밖까지 이어졌다) 나는 몇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많은 일을 시작했으며 다 끝내지는 못했다. 목구멍은 계속 아팠고.
학기가 일주일 남은 이 시점, 갖가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겠고. 작년에 심포지엄 준비할 때에도 아팠었는데 이번에도 아픈 걸 보면 이건 내 적성이 아닌가 싶어서 웃기기도 하고. 머리가 아니라 몸이 거부를 하는 건 막을 도리가 없으니까. 아파서 며칠 서러웠던 것 이외에도 졸업 이후의 일자리 때문에 약간 골치를 앓았다. 정말이지, 생활이 기침으로 꽉 막혔었는데 시간이 줄줄 새고 있다고 생각했더니 아쉬워서 다급했다. 어제는 한국애들이 기획한 축제가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했다. 실험실을 다니기 시작한 재작년부터 나는 그런 행사들에 참여하는 걸 전부 멈추었다. 다들 바쁘고 다들 가득하며 다들 아무쪼록 잘, 살아내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나는 습도라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에 자러 가기 전 기침을 가리며 머리맡에 젖은 수건을 건다. 당신을 계속 엿봤던 건 당신도 나와 비슷한 습도로 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강조하자면, 그런 '생각'에서가 아니라 그런 '마음'에서였다고. 습도뿐만 아니라, 우기와 건기의 주기와 빈도마저 나와 닮지는 않았나 알고 싶어서. 앞으로도 계속 알 수 있다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