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잡담을 하며 잡숙제를
/ Destroyer - Chinatown /
오늘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잡담을 하며 잡숙제를 하다가, 저명한 교수님의 강연이 있다고 들어서 그걸 보러 갔다. 강의실은 금세 가득 찼고 교수님이 강연을 시작했는데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필기를 했다.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연설용 목소리는 낮을수록 좋다고 했었지, 그게 청중에게 더 많은 신뢰를 준다면서, 그런 생각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그러다 강의 중반 정도 되어서야 교수님이 트렌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본인이 직접 언급했다). 약간은 놀랐지만, 일차적으로는 그 애매한 목소리가 설명이 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어떤 존경심이 들었던 것이, 그 교수님이 두 가지 성별을 다 살아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계에서 여자들을 찾아보기 힘든 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과학 관련 학문에 뒤쳐지도록 유전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에 반박하는 연설 및 기고를 해왔다고 해서. 누군가 자신의 신변을 털면서까지 목소리를 낸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그런 삶을 동경하고 존애하면서도 막상 어떤 행동을 하지도, 그런 행동을 할 거리도 딱히 없는 나는,
아주 바빴던 날들이 쓸려 내려가자 오랜만에 주말이 느슨해져서, 소프트볼 연습 및 경기와 부활절을 맞은 성당 미사로 지난 주말을 보냈다. 소프트볼 마지막 경기는 대학원생들과 했는데 그들은 스피커를 가지고 와서 경기 내내 싸이키델릭한 음악을 틀어서, 좋았다. 날씨도 좋았다. 우리는 모든 경기를 아쉽게 졌지만, 나는 오랜 시간 뛰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좋았다. 자전거를 거의 8년 만에 탔다. 고기가 많이 들어간 김치찌개도 먹었고 적게나마 술도 마셨다. 여름을 계획하려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잠도 많이 잤다. 비정상적으로 이상적인 주말이었어서, 사실 월요일을 시작하며 괴리가 컸다. 벼르고 있던 컴퓨터를 사서 좋긴 하다, 점원이 자꾸만 나에게 삼성의 위대함에 대해 설파하려고 했던 점만 빼면(내가 바로 삼성의 나라에서 왔다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지).
어제 저녁에는 사람들과 Fitz's에 가서 음식을 한껏 시켜 먹었다. 사순절이 끝나서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날씨가 좋아서 우리는 건물 밖에 앉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 한 명은 연애의 조짐이 보이는 3살 연상의 여자에 대해 이야기했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의 신경을 긁었던 이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나는 약간의 후회가 남는 일들을 매우 짓이기고 뭉뚱그려 설명했다. 나머지 한 명은 자기가 어째서 혈육이 아닌 사람에게 마음을 못 주는가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위로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의 혈육이 못 되므로. 나도 너와 비슷해, 하지만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기껏 이 정도였지만 돌아오는 말은, 제가 딱히 상처를 두려워해서 그런 건 아니구요, 괜히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 그래요, 였다. 더욱 함구하게 되었다, 그를 설득하려 드는 내 노력 또한 그에게는 낭비이겠으므로. 밤이 되자 날이 추워져서 각자는 각자의 장소로 돌아갔다. 나는 괜히 말랑말랑한 기분이 되어 많이 떠들었고,
아무래도 꽃가루가 심해서 너도나도 재채기를 한다. 나만 괜찮다. 자랑스러워야 할 내 건강함에 괜히 머쓱해진다. 괜히 석양을 바라본다. 해가 떨어지기 직전의 긴장이 좋다. 오늘 영화 수업에서 교수님은 어떤 연출 스타일을 설명하며 창백한 정적pale silenc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런 것과 비슷한 공기가 좋다. 그런 공기는 수신자와 발신자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여러 시선으로 엮어져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확신이 들 때만 매듭을 새로 만들고, 그러다가 가끔 당신에게서 내 저녁의 평행을 본다. 그래서,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재차 읽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토록 팽팽한 메아리를 탐독하며 혹시 당신도, 내게서 어떤 류의 평행을 보지는 않을까 싶어서... 멈출 수가 없다. 앞으로도 자꾸 그리고 자주 듣고 싶다고. 사소한 욕망을 기반으로 자꾸 그리고 자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