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돛단배

어릴 때부터 과학소녀는 아니고 그냥 잡궁금함이 많았던

chloed 2012. 3. 24. 16:07


Sóley - Pretty Face /


(from WashU Problem Facebook)



어릴 때부터 과학소녀...는 아니고 그냥 잡궁금함이 많았던 나는(고1까지는 나 자신을 이과로 분류하지 못했고 사실 지금도) 비구름의 경계가 한 구역을 지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상상하곤 했는데 한 번도 그걸 직접 겪은 적이 없어서 그 상상은 항상 상상에서만 그쳤다. 몇년 전 이 날씨 변덕 심한 도시에 온 이후로는 그걸 여러 번 경험할 수 있었는데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같은 학교 캠퍼스의 한 쪽은 비를 맞고 다른 쪽은 해를 쬔다. 전철역에서 학교로 걸어가는데, 올려다본 하늘이 구분되어 있었다. 이쪽은 지옥, 저쪽은 약속의 땅. 너무, 보란듯이 양가적이어서 우스울 정도로. 불행은 내가 하루를 보낸 의대 캠퍼스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동쪽으로.

이틀 전에는 노트북 어댑터가 타 버려서, 어이없게도. 학교에서 돌아와 일하러 가기 전에 졸려서 뿌연 시야로 침대에 앉아 해동한 중국 음식을 퍼먹던 나는, 어댑터에서 나는 소리와 연기를 알아챈 순간 놀라서 밥그릇을 내려놓고 급히 코드를 뽑았다. 의대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까지 놀라서 두근대는 마음을 누르며 어댑터를 또 새로 살까 고민하다가,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노트북을 아예 바꾸는 방법을 생각했다. 의외로 흔쾌히 허락하셨고, 원래 내년에 대학원 가기 직전에 바꾸려고 했지만.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구입한다면 최대한 빨리. 그런데 지금처럼 PC를, 아님 Mac으로? 내가 의견을 구한 몇몇 주변인들은 Mac을 권한다. 그러나 아마도 그건 그들이 그걸 쓰기 때문에...

이유를 묻는 건 모두의 습성이고 따라서 자꾸만 베개를 웅크리며 잠에 빠지는 순간을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경계는 원래 아프지, 오늘의 먹구름이 자기 테두리로 그걸 말해주고 있지 않았니. 칼날 같았지. 아니면 머리카락 같거나. 온기도 소음도 없다. 같은 온혈동물들끼리 왜 이래, 우리. 애원과 외면은 같은 얼굴이니까. 너 또한 정적을 읽지 못하던 때가 있지 않았냐면서.

올려다보는 각도는 다양한데 전방주시를 하지 않았던 건 내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 손목은 잡기 쉽게 생겼다. 어떤 감촉들은 이미 잊었다. 어깨는 너무 오래 접혀있다. 불리우는 이름을 들을 준비가 되었던 것뿐인데. 그 소원의 부피가 크다고 거절한다면, 나는 낙담한 표정으로 또 계산을 하게 되니까. 위로를 하고 싶어서 마음 대신 고민을 했고, 그러나 내가 비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었고, 나는 방한도 방수도 되지 않는 주제에 체온을 너무 일찍 소모하며 너무 쉽게 소망했고, 그래서 벌을 받는 거라... 그렇게 판단하는 편이 마음이 편해서.

수화는 전화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지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친구에게 빌린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싶은데 그럴 핑계가 없다. 의도치 않게 손목시계를 선물 받았다, 그런데 여자용이 아닌 것 같아 많이 무겁다. 내 팔찌는 아직도 뉴욕에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