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돛단배
흥미가 생기지 않는 일에 흥미가 있는 것처럼
chloed
2012. 2. 26. 00:25
/ Gold Panda - Marriage /
흥미가 생기지 않는 일에 흥미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노력에 대해 생각.
어디서 내가 글을 쓰며 살 팔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과학을 하는 어줍잖은 내 모습을 염려하고. 그 와중에,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자수성가는커녕 과학이 벅차 헐떡대는 나를 절대 이해 못 하시겠지(그간의 어록으로는 "집에 책상이 있고 심지어 자기 방이 있는데 돈 주고 독서실은 왜 끊나?"와 "학비를 대주는데 학점이 왜 만점이 아니지?" 등이 있다, 틀린 말씀이 아니어서 효과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던 어린 나). 부모님과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런 얘기가 오갈 때마다 나는, 그러니까 그때 내가 피아노를 계속 했어야 한다며 웃었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억지(엄마), 아니면 어차피 너는 손이 작아서 안 된다(아버지), 정도가 내게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왜들 그러세요, 농담이잖아. 다만 당시 며칠을 울고 불었던 내가, 피아노가 취미로 남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던 정신연령을 가졌었더라면 좋았겠는데.
그런데요, 나도 나를 한두 번 의심한게 아니라서요. 하지만 평생 과학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글 쓸 업보는 변하지 않을 거에요(지엽: 카톨릭이면서 자꾸만 업, 연, 이런 단어들을 언급하는 나를 사람들은 거슬려하나?). 어차피 (과)학계는 평생 남 글 읽고 몇 글은 헐뜯고 그러다 결국에는 자기 글 쓰고 자기 글 지키려는 곳이니까. 저도 그게 힘들고 짜증난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좋으니까, 하기 싫은 마음보다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니까, 아니 사실은 내가 그 고난과 싸움을 진짜 좋아하니까 놓지 못하는 거고. 아주 약간은 활자 중독 - 그리고 나는 그게 하나의 위안이라고 쓰네.
나는 그러나, 띄어쓰기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내가 못마땅하고. 단어를 고를 때면 항상 조심스럽다. 어젯밤에는 내가 혼잣말을 영어로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냉장고에 붙여져 있는 고지서의 높은 전깃세를 보고 깜짝 놀라 뭐라고 길게 중얼댔는데, 옆방에서 로레인이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다. 다들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한 번 더 깜짝 놀랐고, 무안해져서 웃고 있는데 로레인이 그런데 클로이, 너 혼잣말 영어로 하네? 했다. 그러게 말이야. 작년에도 Ally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Ally가 방에서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는데.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집 떠난 생활이 길어지고 있지 않나. 단어들은 나와 모국과의 거리만큼 낯설어진다. 그들도 내가 낯설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착잡해져서,
결국에는, 나는 이도저도 아닌가... 싶어서.
그런 순간들은 자주 있다. 어제는 밤새 쓴 논문 초록과 기타 등등에 대해 박사님과 상담했다. 잘 썼어, 다은아, 잘 썼는데, 논문 초록 말이야, 단어들이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 나는 시험들을 모조리 끝내고 모자란 잠을 이틀 동안 보충했지만 그래도 졸려서 커피잔을 만지고 있었다. 박사님은 각 문장마다 특정한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별을 그려가며 설명하셨다. 나는 졸려서 몸이 더웠다. 과학적, 과학적 글쓰기라는 건, 다은아. 하나도 빼놓을 말씀이 없어서 나는 몹시 경청했다. 마지막 문장에서 박사님은 한 구절에 동그라미를 자꾸 치셨다. 이거 봐, 이 부분 읽으면서 참 여성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어. 카페인이 돌기 시작해서 머릿속이 점차 또렷해지고 있었지만 시야는 흐려졌던 것 같기도 하다. 렌즈를 안 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꾸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네요, 숙지하겠습니다...
논문 초록을 그렇게 훑고 나자자, 갑자기 창문 밖으로 엄청난 양의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거짓말 같아서, 너무 거짓말 같아서 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이 년 전에, 생물과 사무실에 찾아가 전공신청서에 서명을 하고 건물을 나설 때도 눈이 왔었는데. 나는 로익솝의 Silver Cruiser를 들으면서 온실을 등지고 학교 정문 쪽으로 걷고 있었다. 그때도 걸으면서, 눈이 오는 타이밍이 거짓말 같다고 생각했고(사실은 영화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그 둘은 이음동의어이다). 굉장히 추워서 몸의 온 말단 부위가 시려웠다. 심지어 그때에 대해서 글도 썼었다.
이렇게 여차저차한 시간을 보내. 조금은 가닥이 잡히는 것 같다가도 끈을 놓치는 것 같아서 나는 아슬아슬해. 그래서 나는 자꾸 예전을 더듬어, 의대 건물 9층에서 내리는 눈을 보다가 재작년을 더듬었던 것처럼. 그러다가 작년 생각이 나기도 하고. 작년은 유난히 추웠었는데, 그치. 세상은 너무 쉽게 얼었고 사람들은 자꾸만 미끄러졌잖아. 호흡조차 얼 것 같은 공기가 나는 사실, 좀 좋았어. 그때는 유자차를 자주 마셨던 것 같은데. 상대방이 떠난 시간에는 유자가 말라 붙은 잔을 씻었고. 그때의 겨울은 지구 공전 저편으로 넘어갔고 지금의 겨울도 금방이겠지. 또 봄이구나. 각자가 없어도 괜찮은 각자를 발견할 때 나는 다소 서러워서 어깨를 움츠리지. 그게 우리의 한계였을까... 생각하면서.
어디서 내가 글을 쓰며 살 팔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과학을 하는 어줍잖은 내 모습을 염려하고. 그 와중에,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자수성가는커녕 과학이 벅차 헐떡대는 나를 절대 이해 못 하시겠지(그간의 어록으로는 "집에 책상이 있고 심지어 자기 방이 있는데 돈 주고 독서실은 왜 끊나?"와 "학비를 대주는데 학점이 왜 만점이 아니지?" 등이 있다, 틀린 말씀이 아니어서 효과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던 어린 나). 부모님과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런 얘기가 오갈 때마다 나는, 그러니까 그때 내가 피아노를 계속 했어야 한다며 웃었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억지(엄마), 아니면 어차피 너는 손이 작아서 안 된다(아버지), 정도가 내게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왜들 그러세요, 농담이잖아. 다만 당시 며칠을 울고 불었던 내가, 피아노가 취미로 남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던 정신연령을 가졌었더라면 좋았겠는데.
그런데요, 나도 나를 한두 번 의심한게 아니라서요. 하지만 평생 과학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글 쓸 업보는 변하지 않을 거에요(지엽: 카톨릭이면서 자꾸만 업, 연, 이런 단어들을 언급하는 나를 사람들은 거슬려하나?). 어차피 (과)학계는 평생 남 글 읽고 몇 글은 헐뜯고 그러다 결국에는 자기 글 쓰고 자기 글 지키려는 곳이니까. 저도 그게 힘들고 짜증난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좋으니까, 하기 싫은 마음보다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니까, 아니 사실은 내가 그 고난과 싸움을 진짜 좋아하니까 놓지 못하는 거고. 아주 약간은 활자 중독 - 그리고 나는 그게 하나의 위안이라고 쓰네.
나는 그러나, 띄어쓰기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내가 못마땅하고. 단어를 고를 때면 항상 조심스럽다. 어젯밤에는 내가 혼잣말을 영어로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냉장고에 붙여져 있는 고지서의 높은 전깃세를 보고 깜짝 놀라 뭐라고 길게 중얼댔는데, 옆방에서 로레인이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다. 다들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한 번 더 깜짝 놀랐고, 무안해져서 웃고 있는데 로레인이 그런데 클로이, 너 혼잣말 영어로 하네? 했다. 그러게 말이야. 작년에도 Ally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Ally가 방에서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는데.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집 떠난 생활이 길어지고 있지 않나. 단어들은 나와 모국과의 거리만큼 낯설어진다. 그들도 내가 낯설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착잡해져서,
결국에는, 나는 이도저도 아닌가... 싶어서.
그런 순간들은 자주 있다. 어제는 밤새 쓴 논문 초록과 기타 등등에 대해 박사님과 상담했다. 잘 썼어, 다은아, 잘 썼는데, 논문 초록 말이야, 단어들이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 나는 시험들을 모조리 끝내고 모자란 잠을 이틀 동안 보충했지만 그래도 졸려서 커피잔을 만지고 있었다. 박사님은 각 문장마다 특정한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별을 그려가며 설명하셨다. 나는 졸려서 몸이 더웠다. 과학적, 과학적 글쓰기라는 건, 다은아. 하나도 빼놓을 말씀이 없어서 나는 몹시 경청했다. 마지막 문장에서 박사님은 한 구절에 동그라미를 자꾸 치셨다. 이거 봐, 이 부분 읽으면서 참 여성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어. 카페인이 돌기 시작해서 머릿속이 점차 또렷해지고 있었지만 시야는 흐려졌던 것 같기도 하다. 렌즈를 안 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꾸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네요, 숙지하겠습니다...
논문 초록을 그렇게 훑고 나자자, 갑자기 창문 밖으로 엄청난 양의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거짓말 같아서, 너무 거짓말 같아서 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이 년 전에, 생물과 사무실에 찾아가 전공신청서에 서명을 하고 건물을 나설 때도 눈이 왔었는데. 나는 로익솝의 Silver Cruiser를 들으면서 온실을 등지고 학교 정문 쪽으로 걷고 있었다. 그때도 걸으면서, 눈이 오는 타이밍이 거짓말 같다고 생각했고(사실은 영화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그 둘은 이음동의어이다). 굉장히 추워서 몸의 온 말단 부위가 시려웠다. 심지어 그때에 대해서 글도 썼었다.
이렇게 여차저차한 시간을 보내. 조금은 가닥이 잡히는 것 같다가도 끈을 놓치는 것 같아서 나는 아슬아슬해. 그래서 나는 자꾸 예전을 더듬어, 의대 건물 9층에서 내리는 눈을 보다가 재작년을 더듬었던 것처럼. 그러다가 작년 생각이 나기도 하고. 작년은 유난히 추웠었는데, 그치. 세상은 너무 쉽게 얼었고 사람들은 자꾸만 미끄러졌잖아. 호흡조차 얼 것 같은 공기가 나는 사실, 좀 좋았어. 그때는 유자차를 자주 마셨던 것 같은데. 상대방이 떠난 시간에는 유자가 말라 붙은 잔을 씻었고. 그때의 겨울은 지구 공전 저편으로 넘어갔고 지금의 겨울도 금방이겠지. 또 봄이구나. 각자가 없어도 괜찮은 각자를 발견할 때 나는 다소 서러워서 어깨를 움츠리지. 그게 우리의 한계였을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