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돛단배
나는 사실 지금 조금 서럽다 세탁물을 건조기로
chloed
2012. 2. 15. 15:27
나는 사실 지금 조금 서럽다. 세탁물을 건조기로 옮기려고 지하실에 갔는데 아랫집 여자애가 건조기를 이미 돌려놔서, 웅웅대는 건조기 앞에 멍청하게 서 있다가 다시 올라왔다. 세탁물 건조 다 되면 베개에 따끈한 베갯잇 빨리 씌우고 냉큼 자고 나머지는 내일 정리하려고 했는데 나 이제 어떡하지. 졸리다. 머리가 아파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면이 부족하면 이상하게 몸이 무척 뜨겁다. 빨리 자라고 몸이 발열하며 협박하는 건지. 탈수를 마친 내 옷들은 탈수를 마친 모습 그대로 차갑게 아주 차갑게 세탁기 안에 들어있다. 그 안에 들어가서 파묻히면 몸이 식을까.
정확히 말해서 서러운 기분보다는 조금 더 격한 기분인데, 화난 건 또 아니고. 하지만 그 사이의 애매한 기분이라 냉장고에서 샐러리를 꺼내 물에 박박 씻어서 열심히 먹었다. 역시 말랑하게 화났을 때에는 샐러리를 씹어야 한다. 방 어디선가 자꾸만 핸드폰 진동 소리가 나는데 찾을 수가 없다.
피해 다니지마, 너나 숨어 다니지마, 나 안 숨어 다니는데, 나도 안 피해 다녀, 이런 대화나 반복하던 성우를 오늘 아침 신호등 앞에서 마주쳐서 잡담을 하는 와중("주차 어디에 했어?" "펄싱에다가." "왜 우리 구역에 해. 침입자네." "아니야, 방문자야...") 칭얼댔다("나 피곤해." "시험 언제야?" "1시. 그런데 끝나고 랩 가야 돼."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그런거 아닌데... 나 놀고 싶어." "그렇지만 우린 치열하게 살아야지." "뭐야? 말이 다르잖아..."). 그 이후로도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에게 칭얼거렸다. 졸려, 발 시려워, 배고파, 힘들어, 좀 있다 시험 쳐, 시험 쳤어, 숙제 내야 돼, 졸려, 추워, 머리 아파, 일 가기 싫어, 일 안 갔어도 될 뻔 했어, 스크리닝 가기 싫어, 어깨 아파. 그런데 사실 이 정도면 칭얼대는게 아니고 불평이지. 그걸 떠나서 우리들의 대화에는 진척이 없어...
할 것들이 많다!
할 일들을 생각한다. 그와 함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웃기겠지만, 내 마음의 기본값은 항상 어느 정도 머무르는 미안함이다(누군가는 그게 그냥 버릇일 거라며 내 앞에서 나를 비웃었다... 비웃어도 좋아요, 버릇 맞아요). 그런데 그 디폴트마저 적용이 안 되는 경우들이 드물게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사실은 더 미안해져야 맞는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고. 모르겠다. 어쨌든 요새는 공기가 무채색이다. 날씨 때문이다. 오전에 지하실 쇼파에 앉아서 공부를 하면서, 눈을 붙이러 내려와 지친 등을 보이며 쇼파에 눕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걸 보며 나는 코끼리 무덤을 생각했다. 코끼리들은 죽을 때가 되면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코끼리들의 무덤에 가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다. 진짜일지는 모르겠다. 신경행동학 수업에서는 그런 건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신 나는 박쥐와 올빼미, 전기 가오리와 상어 그리고 비둘기에 대해서 착실하게 배웠다. 물론 인간도 조금 다루었다. 어떤 나비는 감지할 수 있는 빛의 파장이 일곱 가지라고 한다. 뭐가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예전에 심리철학을 들을 때, 같이 수업을 듣던 전형적인 인지과학 빠돌이인 Ed는 우리가 박쥐가 아닌 이상 박쥐의 심리를 어떻게 알겠냐는 한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불을 때우러 갔었다. 그러니까 클로이, 우리도 직접 박쥐가 되어 보자며.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서 웃기만 했고, 따라 나가지도 않았고, 어떤 압력도 느끼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 집은 조명이 좋지 않다. 아이들은 그 집에서 모여 떠들 때면 항상 낮게 웃었다. 그리고 종종 이상한 이야기들을 했다. 가령, 레베카 블랙의 Friday를 어떻게 실존주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이 따위 이야기들.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고, 실없이 웃거나 때로는 폭소를 했다. 올해 들어 아직 그 집에 간 적이 없다. 걸으면 금방이긴 하지만 갈 일이 없다. 그 집 지하에 아직도 내 예전 일기장이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찾으러 가야 한다. 이 생각은 작년 여름부터 하고 있다. 늘 이런 식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누가 읽어도 상관 없는 내용들만 있기도 하다. 마치 내가 여기에 올리는 글과 비슷한 모양새라는 뜻이다. 이렇게 쓰면 끝도 없이 쓸 수 있다. 요새의 나는 여러 것에 흥미가 있지만 박력이 없다. 글이 두서가 없어도 다듬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붙일 노래도 없다. 오늘 하루 종일 음악을 듣지 않았다. 베개가 벌거벗고 있으니 그걸 베고 잘 수는 없다. 아마도 팔베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