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돛단배

조금만 있으면 2월이고 작년 이맘때 휴교할 정도로

chloed 2012. 2. 1. 15:31


/ My Bloody Valentine - Only Shallow /


조금만 있으면 2월이고. 작년 이맘때 휴교할 정도로 모든 곳이 꽁꽁 얼었던 것과는 달리 어제와 오늘은 최고기온이 섭씨 20도를 찍었다. 다들 좋아하면서도 당황했고. 나는 그보다 어제 숙면을 취해서 오늘 아침 기분이 최고였다. 유투브에서 고래 소리whale songs를 틀어두고 누웠더니 5분 만에 잠이 들었어, 점심을 먹다가 그 말을 했더니 현민이는 꺄윽꺄윽? 거리면서 돌고래 흉내를 냈고 나는 숨 넘어갈 것처럼 웃다가 돌고래 아니고 고래라니까! 라고 항변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숙제를 하다가 들어간 신경행동학Neuroethology 수업에서는 우연찮게 소리 방향 인지sound localization에 관한 강의를 들었고, 필기를 하던 나는 기분이 다소 이상해졌다. 원래는 블로그에 글 쓰면서 틀어두는 음악을 첨부하지만 오늘은 어제 그야말로 베개처럼 잠이 든 걸("sleep like a pillow") 기념하며 MBV의 주파수 나간 노래.

그때 나는, 몸 어딘가에 작게라도 멍이 남았으면 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원래 나는 잘 부딪혀서 멍이 많은데. 같이 방을 쓰던 시절 Chelsea는, 내 다리에 가끔씩 맺혀 있는 멍을 볼 때마다 무엇 때문에 생긴 멍이냐고 물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일일히 다 기억해,라고 웃어버리면 굳은 표정으로 앞으로는 모든 멍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라고 했다. 본인의 가족력 때문인지. 나는 알겠다고 했고 예전보다는 많은 멍을 기억했다. 그런데 이제는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할 자국이 없어. 나는 기억을 기록에 의존하는 편이다. 안그래도 옅은 기억이 더 옅어질 것이다. 그냥, 그렇게 두면 되나?

이성을 잃은 소란에 어깨를 잡혀가면서 나는 짧게나마 이렇고 저런 생각을 했는데, 영양가 있는 생각은 없었겠지만 늘 그렇듯 마음은 불편했고 대체 난 무얼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너무 빠르게들 가지 마요. 난 좀 앉아서 생각도 하고 팔베개도 베고 하루 정도는 방문을 잠그고 침대에 누워서 눅눅한 가수면 상태에 있어보고도 싶은데. 물론 또 고래 소리 틀어놓고 내 방이 해구라고 생각하면서? 바깥 수압은 어느 정도일까 계산하면서?

아무튼 이질적인 악력을 그제서야 체감하며 슬퍼했지. 너의 반응 앞에서 나는 사념도 궁금증도 기대도 불안함도 긴장감도 걱정도 없고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어. 더 심각한 건 미안하지도 않다는 거야. 왜 그럴까. 재미가 없다는 건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증상일지도 모르기 때문일까. 즐거움이 없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