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돛단배

가고 싶기도 하고 가고 싶지 않기도 하다

chloed 2012. 1. 9. 02:11


/ Boards of Canada - Chromakey Dreamcoat /


가고 싶기도 하고, 가고 싶지 않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는 아는 척보다 모르는 척이 더 어려울 텐데 용케 어려운 걸 택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랜 기간 체득한 거라서 어떻게 멈출 수도 없다. 내가 무슨 경로로든 발견당하고 문책당할 때까지 얼마나 오래 휴지(休止) 상태일 수 있는가 시험하는 것 이외에는 더 재미있을 것도 더 심심할 것도 없다는 이야기. 먼저 발성하고 싶지 않다. 외면해볼까. 나는 조건적 경멸 다음으로 책임전가에 능하다. 그 비린내 나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공간에서 나를 오려내고 싶다.

언제부터 모든 것이 이 정도로까지 그럭저럭이었나. 지난 여름부터였나? 아니면 지난 겨울? 그럭저럭하지 못한 기분들이 날숨을 몇 초만 참으면 결국에는 그럭저럭한 기분들로 전락한다는, 그럭저럭하지 못할 때에는 상기하기 쉽지 않은 그 사실이 어쩔 수 없어서 얄밉다. 코 끝에 재채기가 아슬아슬하게 걸린 기분.

오전에 역을 관통해서 걷는데 저기요, 라는 말이 스치듯 들렸다. 멈춰 서서 뒤를 보니 어떤 사람이 나를 등지고 행인을 부르다가 소득 없이 돌아서고 있었다. 눈이 마주쳐서 시선을 끊지 못하고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그는 손을 들어 머리 위 표지판을 가리키며, 부산역 가려면 여기서 타는 건지... 라고 작게 물었다. 억양이 타지인 같아서 나는 네, 이쪽 지하철 타셔서 갈아타지 마시고 열두 정거장 가시면 부산역 나와요, 라고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물어오는 얼굴이 미묘하게 낙담으로 가득 차서 나는 겨우 한 음절의 대답만을 뱉고 가만히 서 있었다. 어째서 그런 표정을. 안그래도 요새 자꾸만 남들-다시는 볼 일 없는 지나가던 이들-의 압지에 눌린 듯한 표정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는데. 개찰구 앞에서 천 원만 달라던 할아버지 얼굴.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나에게 어제도 오지 않았냐고 묻던, 처음 간 가게 직원 얼굴. 그런 것들.

사실은 가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런 저런 표정들은 한켠에 놔둬도 되겠지. 좋게 생각하고 싶다. 소란한 것들. 붐비는 것들. 정신없는 것들. 어떻게든 떠들썩하면
 빈 것들은 나중에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지금은 너무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