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돛단배
몇 주 째 혼자 일하고 있어서 말수가
chloed
2011. 8. 10. 15:38
/ Sigur Rós - Inní mér syngur vitleysingur /
몇 주 째 혼자 일하고 있어서 말수가 줄었다. 어차피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은 휴대폰도 꺼둔다. 여덟 시간 정도 입을 닫으면 말 대신 생각이 쌓이고 단단해진다. 사진들이 꽤 잘 나오고 있다. 허리가 아프고 손이 추위에 곱아드는 것만 빼면 좋은 날들이다. 적어도 금요일까지는 모두 마무리해야 한다. 계획대로만 하면 가능하다. 오늘은 퇴근하면서 도서관에 들러 책 한 권과 DVD 몇 장을 반납했다. 책 세 권과 DVD 한 장을 더 빌렸다. 사서는 장갑을 뜨개질하다가 바코드를 찍어주었다. 책 반납일이 마침 내 생일과 같다. 쓰거나 읽을 때는 아이슬란드적인 꿈icelandic dream이라는 재생목록을 듣는다. 글자 그대로 아이슬란드 음악만 잔뜩 있다. 시규어 로스Sigur Rós와 비요크Björk의 몇 노래를 제외하면 가사가 없어서 알맞다. 책을 읽다 졸리면 전등을 끄고 눈을 감는다. 불면이 반갑다. 새벽 여섯 시의 요란한 쓰레기차는 안 반갑다. 안 그래도 요새는 글을 하나 쓰고 나면 어떻게든 탈진한다. 내 말을 들은 수화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했다. 바람직하긴, 내 입에 난 구멍 개수를 세면 그런 말 못할 걸. 수화가 지난 오 년 동안 나에게 했던 말들 중, 와 닿는 두 마디가 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하라는 말과, 혹독해지라는 말. 극과 극이다. 게다가 후자는 사실 오늘 들은 말이다. 둘 다 하라는 건지, 그 둘의 중간을 하라는 건지. 괜히 고민해본다. 어쨌든 수화가 드디어 소포를 보냈다고 한다. 철현이는 아직도 미적댄다. 나도 여러 가지로 미적댄다. 저녁에 찬수랑 통화를 하다가, 대학원 지원에 대해 절반 정도 설득 당했다.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이므로 기회비용을 따져야 하겠다. 올해 지원해서 잃을 것들을 나열해 본다. 매우 바쁠 것 같다. 그렇다면 수업 하나를 빼야 할 텐데. 빠져야 할 수업은 뻔하게도 작문수업이겠지. 씁쓸하다. 나는 귀가 참 얇다. 여튼 생각해 볼 문제이다. 찬수는 돈이 남는다며 다음 주말에 놀러 오겠다고 한다. 학기 시작 전 마지막 주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반갑지만, 여긴 정말 볼 게 없어 걱정이다. 밥이나 잘 먹여야겠다. 지영 언니가 졸업하며 주고 간 간이 매트리스가 이렇게 유용할 수 없다. 이번 주말에도 아이들이 온다. 또 잠시 친구 부자가 된다. 이렇게 숨쉬지 않고 쓰는 건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고 3때 포크너Faulkner를 읽으며 처음 배웠다. 당시 우리들은 어설픈 포크너처럼 블로그질을 했었다. 지금은 몇 명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