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돛단배

그러니까 사람을 의무감으로 대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chloed 2011. 5. 29. 05:37



/ Adele - He Won't Go /


그러니까 사람을 의무감으로 대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문장은 남과의 관계에서 책임감 없어도 된다, 라는 문장과는 확실히 다르다. 물론 사람을 대할 때 어느 정도의 의무감이 섞일 수도 있겠지만 의무감만으로는 지탱할 수 없는 것이 너와 나의 관계. 애초에 의무감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또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어떤 시점을 지나면서부터는 머리만으로는 원활하게 유지되지 못 할 것이므로. 의무감으로만 이어진 관계에는 어느 순간 동정심이 끼어들게 되고 그 순간부터는 겉잡을 수 없어지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아주 대부분의 경우 마음으로 움직이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그러기에는 내 그릇이 아직은 너무 작아. 내 마음이 머리보다 더 커야할텐데, 내가 정말 늘상 마음으로 달리면 우리는 항상 지치지 않고 행복할텐데. 솔직히 말할게, 어떤 관계에 있어서는 그게 쉽지 않다. 하지만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기말고사를 치고 정신없이 이사를 하고, 환장하게 날씨 좋은 서부에 일주일 정도 놀러가서 친구들도 보고 동생도 보고 모든 걱정을 술로 잊고 놀기도 하다가 토네이도 몰아치는 여기로 돌아와 여전히 실험실에 나간다. 심지어 반지하라 토네이도가 와도 안전한 실험실에서 나는 살짝 무료하지만 그래도 따박따박 발전을 보이며 일을 처리해나가고 있다. 찔끔찔끔 나오는 성과 앞에 입을 헤벌레 한다. 여름 끝자락에는 총체적으로 좋은 결과가 있길. 하지만 책 읽는 속도는 눈에 띄게 더디어졌고 학기 중도 아닌데 다시 손톱을 열심히 뜯고 있다. 글쓰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터질 것 같은데 쓸 수가 없어서인지. 게다가 공부라고 하기에 민망한 것들을 하고 있다. 기말고사 이후로 학생의 본분을 망각한 채로 이번 한 달 잘 쉬었으니 오늘부터 다시 제대로.

어쨌거나 다음 주 수요일이면 또 한 번 이사. 이사는 정말 지긋지긋한 과정이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좀 기분 좋게 이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이제는 진짜 내 집으로 이사를 간다. 기숙사가 아닌, 집! 이게 몇 년 만인지.
일 년 밖에 살지 않을 곳이지만 그래도, 잘 부탁해. 사실 작년에도 집(혹은 아파트) 같이 생긴 기숙사에서 살아서 나름 기숙사 아닌 곳 살며 학교 다니는 기분을 좀 냈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다달이 월세 내는 진짜 "집"이라서 그런지 감회가 남다르다. 이사로 제대로 하고 한 번에 짐정리나 다른 자잘한 가구 정리도 깔끔하게 끝내고 정상적인 생활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서, 이사하는 날은 실험실도 일부러 뺐다. 10일부터는 여름 동안만 우리 집에서 지낼 애들도 들어온다. 이제야 여기서의 진정한 여름이 시작될 조짐.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다. 아니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 좋다. 긍정적이구나!

7월 말에 한국에 4주 정도 들어갈까 했는데 그냥 남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신 평소에 못 하던 것들을 하고 싶다. 여행도 가고 싶고, 운전도 배우고 싶고, 여름 같이 푸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