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돛단배
지난 일요일부터 계속 잠을 제대로 못 잤다가
chloed
2011. 2. 26. 06:11
/ 파니 핑크 - 좋은 사람 /
지난 일요일부터 계속 잠을 제대로 못 잤다가 결국 어젯밤에 기절하듯 잠들었다. 어제 낮에 세미나가 끝나고 긴장이 풀렸는지 강의실을 나서면서부터, 아니 내 프레젠테이션 질의응답이 끝나는 순간부터 쭉 졸렸는데, 그 상태로 유자차를 마시고 성우랑 영화를 하나 보고, 의대 6주 실습을 마치고 일요일에 귀국하신다는 재승 선배랑 고등학교 애들 몇 모여서 쌀국수를 먹었다. 학교로 돌아가려는데 택시가 끔찍할 정도로 안 오길래 시간을 낭비하다가 겨우겨우 돌아와서는 숙제 때문에 도서관에 잠시 들렀고, 집에 돌아와서 10시 반 쯤에 제대로 씻지도 못 하고 생화학 숙제도 안 한 상태로 쓰러져서 자버렸다. 내가 부탁해서 정연이가 날 몇 번 깨우려고 했는데 난 거기에 대고 헛소리를 한게 분명하다 ("정연아,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애...").
내가 돌아다닐 때는 분명 폭풍의 언덕 마냥 비바람이 불었는데, 오늘 새벽 6시에 놀라서 깨보니 그새 눈이 와 있었다. 오랜만에 새벽부터 밥을 지어서 멸치볶음이랑 먹고 생화학 숙제를 수업시간에 딱 맞게 마쳐서 학교에 갔다. 쉬는 시간에 실수로 라떼 대신 산 차이가 그야말로 몹쓸 맛이어서 다 못 먹고 버렸다. 수업을 마치고 실험실에 갔는데 교수님은 안 계시고, 내가 하려고 했던 것도 아직 준비가 안 되어서 그냥 애들이랑 Ibby's에 가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는 어드바이저 미팅을 기다리는 관우랑 별 할 일 없이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나 하고 좀 전에 집에 돌아왔다. 갑자기 시간이 많이 생기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만 24시간 동안 했던 일렬의 행동들이 저 두 문단으로 정리된다니.
다음 학기 시간표가 떴는데 막상 들을(혹은 들어야할) 과목들이 별로 없어서 당황스럽다. 작년 이맘때 정하가 모임에서 4학년 1학기 시간표 짜면서, 생화학 말고는 들을 만한 것들이 없다고 했는데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날이 올 줄이야. 지금이라도 PNP 부전공에서 전공으로 바꾸라도 해도 하려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왜 내가 듣고 싶은 생물 과목들은 봄학기에 많은 거지.
내가 이래뵈도 소심해서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하는 걸 굉장히 떨려하는데 Bio 427 과목이 많은 연습이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애들 여섯 명 + 교수님 한 분) 앞에서 십 여분 동안 100퍼센트 이해하기 힘든 논문들에 대해 떠들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여서 들을까 말까 끙끙댔는데 어차피 내가 학계에 남고 싶으면 계속 해야할 일이다 싶다. 난 단순해서 교수님 칭찬을 받으면 마음이 무럭무럭 자란다. 열심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