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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사람들은 어떻게 홀로 수면을 취할 수 있습니까?











최근에 봤던 삼십 분 가량의 단편영화에서는 매일 정해진 시각에 집 옆을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손 흔드는 여자가 나왔다. 여자는 기차가 도착하기 몇 분 전부터 창문 밖을 기웃거리며 기차를 기다리고, 기차가 집 옆을 스치듯 지나갈 때마다 집 안의 접시들은 아슬아슬하게 흔들린다. 그 단편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특정한 루틴이 가져다주는 행복과, 그 루틴이 예고 없이 흔들리고 깨어질 때의 환희에 대해 생각했다. 그 단편영화는 실화 바탕이고, 여자는 제인 버킨이 연기했다. 나와 동갑인 남자가 감독을 했는데 그는 취리히의 어떤 오케스트라 객원 멤버로, 첼로를 연주한단다. 루틴처럼 첼로를 켜는 걸까, 루틴처럼 영화를 찍는 걸까.


깜빡하고 창문을 있는대로 열어두고 잤다. 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건 나의 루틴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가끔 불을 환히 켜두고 자는데 그건 강제 소등 덕에 생겨버린 고등학생 때의 버릇이고, 띄엄띄엄한 버릇도 루틴이라면 루틴이겠지만 아무래도 좀 어폐가 있다. 도움이 필요하다. 집에 남이 와서 자고 가는 날에는 내가 의식적으로 불을 끄고 침대에 기어 들어가거나, 남이 한숨(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마음대로 상상해보는데)을 쉬며 불을 꺼준다. 비로소 나는 어두워진다. 그런데 창문은 왜 안 닫은 거지?


그렇게 일상에 루틴과 루틴 아닌 것을 되는대로 발라가며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따금 누군가 불쑥 끼어들어 내 얼굴에 더러운 걸 비빈다. 미쳤냐고 묻고 싶지만 나 또한 저런 요소를 가지고 저런 시간과 공간을 살아왔다면, 나라고 안 그랬을리 없다. 그 사실이 예상 외로 나를 매우 힘들게 한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제각기 다르게 듣는 것도 그냥 내버려두게 된다. 먹기도 싫었던 밥을 억지로 같이 먹다가, 어쩜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 심지어 그건 내가 먼저 지어낸 말도 아니었는데, 억울하게도. 백 년도 더 전에 오스카 와일드가 썼던 말이고, 나는 그저 그걸 읊었을 뿐이다. 포인트를 완전히 잘못 짚고 질색팔색을 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나는 체념도 못한다. 피곤하다고만 생각한다. 큰일이다. 그러나 다른 장소에서 나에게 똑같은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은 비어버린 맥주잔을 꼭 쥐고 마치 사랑에 빠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한다. 더 큰일이네, 조만간 이게 내 루틴이 되면 어떡하나.


그렇지만 그 또한 온갖 다른 종류의 환희와 함께, 요란하게 깨어지게 되어 있다. 잠결에 분명 숨막히게 꼭 껴안은 것 같은데 물어보니 아니라고 한다. 대문을 열어 보고 깔깔 웃었다.




+ mild high club - ho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