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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Suddenly I realize that if I stepped out of my body I would break into blossom."



-- From The Blessing by James Wright






'아득히 먼 춤' (2016, 임세준 연출)






이야기 도중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봤더니 기계가 꺼져 있었다. 요즘 자꾸만 핸드폰 충전을 잊고, 핸드폰이 꺼지면 꺼지는대로 둔다. 충전기가 손에 잡히면 그제야 핸드폰 충전을 한다. 새벽 한 시였다. 막 뽑은 필름을 손에 들고 계단참에 마주 보고 서 있던 한 시간과, 맥주를 마시며 천천히 밥 먹은 두 시간까지 포함하면 총 일곱 시간을 얘기한 거였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믿을 수 없군. 너 때문이라며 서로 타박을 했다. 목이 아파서 기침을 했다. 애드빌을 먹었지만 버번도 마셨다. 나는 커피에 버번을 타서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커피가 없었다. 어차피 너무 늦었다. 한밤을 넘긴 밤은 축축하게 추웠고, 길을 나서면서는 신기하게도 헤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예상과는 달리 하나도 아프지 않았는데 애드빌 덕분인지 버번 덕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름이 비슷한 사람 둘에게서 동시에 연락이 왔다. 둘 중 한 명에게만 답을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형태가 누구의 것인지 종종 헷갈린다. 생각을 한 번 더듬어야 한다. 그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불필요하다는 건 잘 알겠다. 그러면 우리는 닿았을까? 누가 볼까봐 서둘러 도둑 같은 산책을 나갔다. 후회해? 친구는 커피캔을 건네며 네가 물에 빠질까봐, 라고 했다. 휴일은 휴일처럼 보냈지만 별로 휴일 같지 않았다. 혼란스럽다. 잠깐 여행을 다녀온 친구는, 다른 장소에 다녀올 때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잊고 가는 바람에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보면 매번 세상이 흔들리고, 그래서 어리둥절하다고 했다. 그것 또한 혼란이지만 나의 것과는 다른 혼란이다. 나도 조만간 그런 걸 기대해, 겨우 그렇게 대답했다. 기차표 몇 개를 더 사야한다. 일단은 아쉬운대로 중장거리 운전을 했다. 어떤 형태로든, 평면을 가로지를 때에만 마음이 편하다. 유동적이지 않으면 나쁜 꿈을 꾼다. 하지만 움직인다고, 과연 달라질까? 어젯밤 유람선 하나가 몇 시간 전 내가 건넌 다리에 머리를 박았다.




+ angel olsen - unfuckthe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