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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it's not the matter of "could you" but "would you",


화분에 매일같이 물을 준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젤리형 비타민을 먹고 물을 마시고, 그렇게 출근 준비를 하면서 컵에 수돗물을 받아 흙에 골고루 물을 준다, 그리고 옷을 갈아 입고 기본 화장을 하고 가방과 사원증과 텀블러, 핸드폰과 방 키를 챙겨서 출근한다.


수국은 물을 참 많이 먹는다. 빨대 같다. 하루는 흙에 물이 너무 많아 뿌리가 썩으면 어쩌나 싶어서 이틀 넘게 물 주는 걸 걸러봤더니 그새 시들해져 있었다. 깜짝 놀라서 얼른 물을 주자 수국은 몇 시간 후 거짓말처럼 쌩쌩해졌다(너도 참 살아있구나). 그 얘기를 들은 남자친구는 조금 웃더니 죽이지마, 했다. 어쨌든 내 유일한 식물은 꾸준히 크고 있다. 꽃받침이 덜 자라서 왔던 것들도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색이 없던 모서리가 푸른색과 보라색으로 물들어간다. 예쁘다. 예뻐서 자꾸 만진다. 사진을 어떻게 찍어봐도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



시험을 본 월요일에는 퇴근하고 저녁부터 일단 대충 챙겨 먹고 영화를 보다가 세상 모르게 잠들었지만, 그 이후로는 실험실 일 말고도 학교 다른 지부로 로테이션을 가는 것 때문에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느라 바빴다. 행정적인 부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까다롭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계획을 급하게 수정했다. 다음 쿼터에는 코스웍도 두 배로 늘어나고 쿼터 도중에 이사도 끼어있을 테고, 그래서 수업이 거의 없었던 이번 주에 푹 쉬어놨어야 했는데 공부나 연구 외적인 문제로 여러모로 정신이 사나웠어서 아쉽다. 그런데 또 이렇게 여유로울 때 아니면 언제 마음 편히 정신이 사납나.


올해 초부터 올해에는 어쨌거나 돌아다니거나 거처를 옮길 일이 잦을 것을 직감했다. 그땐 막연하게, 돌아다니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유랑 생활을 겪어보면서 그게 어떤 느낌인지 뒤늦게 안다. 새로운 장소는, 좋다. 새로운 건 어쨌거나 기본적으로 신기하고, 나와 그 장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활력 같은 게 있다. 그런데, 차라리 계속 쉬고 놀러 다니고 내 생활이 아닌 예쁜 것만 보고 다니는 여행 같은 거라면 모르겠지만 생활을 옮겨다니는 건. 마치 삶이 공중에 붕붕 떠있는 것 같다. 중력이 없는 것만 같고, 땅을 밟고 있는 기분이 아니고, 쉽게 말해 그건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이사는 한결같이 귀찮은데다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비행기를 자꾸만 탄다. 정처가 없다.


어떤 시간에 침대에 누워서 침대보나 창문을 꾸준히 바라보고 있으면 햇빛 자국이 천천히 이동하는 걸 볼 수 있다. 공간을 가로지른다. 그렇게 자꾸만 옮겨다녀도 평화롭고 정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또 어떤 위로와 다짐이 된다.




내일은 퇴근하자마자 시카고로 간다. 주말 동안 대학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짐을 챙겨야겠다.



+ moniker - sleeping sou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