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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would you love me over like a bottle of gin,"


생일 선물 뭐 받고 싶어? 받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안 줄래, 뻔한 건 싫어. 남자친구는 나에게 그렇게 묻고 혼자서 그렇게 대답하더니, 생일날 낮 시간에 맞춰 반의 반 정도 만개한 수국 화분을 보내왔다. 너는 네가 나에게 안겨준 마음의 크기나 모양이나 색깔이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예뻐? 좋아? 마음에 들어? 신난 나에게 차근차근 물어오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너 같고, 꽃다발도 아니고 화분이라니 그것도 너무 너 같아서. 응 너무 예뻐 완전 좋아, 하면서 웃었다.


집에 살아있는 것이 들어오자 나도 더, 사는 것 같다.





새로 로테이션을 시작한 실험실은 지난 실험실보다 규모가 크고 일하는 공간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오늘 아침에는 본래 실험실이 있는 병원 본부로 가지 않고 위성 실험실이 있는 집 근처 병동으로 출근했다. 맨날 지나치기만 하다가 안에 직접 들어가보기는 처음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여러 가지 장식과 정원 등, 내부가 예뻤다. 19세기에 수녀들이 사람들을 돌보던 곳이어서 곳곳에 수녀들의 초상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성당에 나가지 않은지 넉 달 정도 되었다.


생활이 바빠서 삶을 미처 못 챙겼어요. 변명은 항시 준비되어 있다. 그게 뻔하게 어줍잖다.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그러면 뭘 하려고 했던 건데?)


어제 늦은 저녁 카페에 가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근처 소파에 앉아 있던 노부부가 언성을 높여 다투기 시작했다. 뭘 읽던 중이라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오가던 말이 문득 끊겼을 때, 그 어긋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수 초 뜸을 들이더니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말했다. "But there are so many reasons to live." 엿듣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신경쓰지 않으려는 찰나, 할머니는 그러나 미동도 하지 않고, "Like what?"


안 될 것 같아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간밤에는 자다가 어쩐 일로 세 번이나 깼다.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잠들고, 다시 잠에 들고, 마지막으로 깼을 때에는 포기하고 눈도 감지 않고 누워 있었다. 그냥 누워 있었다, 이것도 동사動詞라니. 뜬눈으로 부재를 견뎠다. 끔찍했다. 고작 삼십 분 내외였는데도. 뒤늦게 울리는 핸드폰 알람을 끄고 돌아누웠다. 이게 더 길어진다면 혹시 시들지도 몰라,


개연성이 없을 때의 나는 수면 전후의 나 다음으로 제일 솔직하다.



+ jai paul - jas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