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기도가 고작 멍청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면, 지겹다. 패턴이라니. 일정하다니. 측정이 일상이 될까봐 매순간 두려워서 그랬던 거라고 여전히 변명해보지만,
미지의 파라미터를 얼마나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가 - 그 능력이 제일 관건이겠다. 원하는 그림이 있으면 거기에 가서 닿을 수 있도록 틀과 단계, 체계를 차근차근 세우는 과정. 개별적인 숫자들을 수집하고 그것들로 나의 외부를 조립하여 가설을 무장하는 일. 남들의 의구심을 객관적인 수치로 물리치고 내 작업을 단단하게 방어하는 방법. 나의 수집목록을 신뢰하되 맹신하거나 속아 넘어가지 않는 연습. 그깟 숫자 따위로 남을 속이지 않을 것은 제일 기본적인 약속.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와글와글한 숫자들을 굉장히 자주, 생각한다. 쉬지 않고 유의확률에 유의하고, 남들이 통계로 거뜬히 칠 수 있을 장난에 조심한다. 단위와 단위 사이에서 줄을 타면서 치우치지 않는 법을 상기한다. 괜히 경계한다. 그러나,
삶(?이라고 할까 임의로)에 있어서는 숫자에 최대한 기대지 않기로, 한다. 몇달 전 친구를 보러 6년 만에 보스턴에 놀러갔을 때, 마침 봄방학을 맞이해 한가해진 그 동네 동창들이 친구 집에 모여드는 대로 동이 틀 때까지 함께 술을 마시고 지칠 때까지 떠들었다. 나와 아주 가까운 한 친구는, 거실에 우리 셋 밖에 없던 날 갑자기 자신은 확률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너는 확률투성이 경제를 전공하면서 그런 말을 그냥, 할 수 있어? 우리가 묻자 그애는 대답했다: 공부는 공부고, 하지만 그런 숫자들은 우리 행위의 외곽을 정해놓을 뿐이니까... 그러면서 들고 있던 잔에 Kooksoondang Makkoli를 찰랑찰랑 따라 마시며 침묵. 왠지 갈증이 났다. 나는 그런 다짐 같은 거 쉽게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0.05라는 숫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내가 모은 수치들을 관통하는 이야기라고, 한 고등학교 선배가 오래 전 자신의 블로그에 썼던 것을 훔쳐봤던 기억. 과연 그렇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우리는 사람을 못 벗어나, 그걸 초월하면 지금과 여기를 초월하는 것이겠지. 열심히 객관을 지껄여보다가도 우리 모두 결국에는 주관을 안고 산다고 생각하면 그 솔직함의 무게가 고맙게도 너무 커서 나는,
어쩔 수 없어지는 것이다... 괴롭던 거의 모든 것들이.
너는 이야기하다가 문득, 우리가 디뎌 왔던 자국을 되돌아본다. 내가 열 명 중에 혜택 받는 그 한 명이 아니었다면? 당신이 더욱 바빴더라면? 우리가 만났을 때 비가 왔더라면? 그도 아니라면... 네가 이런 식으로 여러 엇갈림을 차근차근 상상해보면서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불안한 듯 묵묵할 때, 나는 너보다도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쉽게 가정할 수 있었지만 그 어느 하나 입밖에 내지 않았고. 우리가 어쨌거나, 교차하고 발생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져서 조금 웃었다.
스침의 확률을 계산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는 이미 우리의 이름을 온몸에 두르고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