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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너는 우리만의 매일이 외딴 섬 같다고 둘레를 따라가며 웃었지만,


좌초를 자초하지 않았으면, 바란다. 그런데 내 세계는 어쨌거나 내가 자초하니까, 결국에는 좌초하지 않을 것을 허공에다 맹세한다는 건데? 무턱대고? 서사가 빈약하네요. 붕괴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네요. 과연 나를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지,


어떤 실험쥐들은 프로토콜에 따라 이산화탄소로 안락사를 시킨다. 살아 움직이던 것들이 단 몇 분 만에 죽어나온다. 그것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숨을 쉬려고 했던 건지 이빨 사이에 모래나 종이 조각 같은 것이 하나씩 끼어있다. 만져보면 아직도 따뜻하잖아, 그게 마음이 좀 그래. 뒷처리를 도와주던 포닥 오빠가 말했다. 아주 바빴던 어느 하루는 저녁도 먹고 세탁기도 돌릴 겸 실험 하나를 마치고 숙소에 들렀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뜨겁게 마른 빨래들을 침대 위에 급한 대로 쌓아두고 병원으로 돌아갔다. 늦게 귀가해서 불을 켰더니 방이 내가 두고 간 모습 그대로 있었다. 얼른 눕고 싶어서 가방을 내려두고 침대 위의 수북한 세탁물에 손부터 댔다. 따뜻했다. 내버려둔지 네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여태 열이 고여있었다.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그래서 좀 그랬다. 함께 숨죽였다.



며칠 정도 현미경에 매달려 있었는데,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영화를 여러 편 봤다. 두 시간을 넘지 않는 영화 속에서 그들은 하루 또는 며칠을 통과하거나, 몇 달 혹은 몇 년을 떠나보냈다. 그처럼 나의 계절도 지나고 있고, 내가 지금 여기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지나가고 있다. 몇 주 함께 일했던 학부생은 보스턴으로 돌아갔고, 얼마 전 여기에서 학위를 딴 아는 언니는 곧 볼티모어로 떠나고, 나는 다음 달부터 새로운 실험실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면 늦잠을 자지 않는 이상 내 몸에 햇빛이 찍혀있는 경우가 없다. 서운한 기색. 처음에는 날씨가 흐려서 방이 어두운 거라고 착각했지. 낮이 짧아지는 건지 밤이 길어지는 건지 다소 헷갈리지만.


그래서인지 조금은 덜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도 출근 전 가끔씩 수영을 하러 가면, 목표했던 거리의 절반에 도달할 때쯤 태양의 고도가 어느 정도 올라오면서 햇빛이 물의 부피를 관통하기 시작한다. 나의 사방이 물그림자로 일렁이고, 바다 같은 게 생각나고, 마음이 고요해지고, 그제서야 아침 같다.


분명 함께 웃고 있다가도 그러나 막상 돌아눕고 보니 거기에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없었던 것 같아서 울었다.



+ balam acab - ap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