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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내가 아무리 대각선으로 걸어도 측면의 너에게 그건 뻔한 평행이겠지,


금요일 오후 정도 되면 긴장이 풀리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분이 느슨해진다. 정신을 차리려고 숨을 참는다. 주말에는 잠을 많이 잔다. 일주일 동안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피곤하고, 아무리 많이 자도 더 잘 수 있을 것 같다. 두세 번 깨면서도 꾸준히 자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없다. 어리둥절하다.


세탁기는 흰 세탁물과 희지 않은 세탁물을 구분해서 일주일에 한 번, 두 대씩 돌리고. 손빨래도 일주일에 한 번. 숙소에서 제공하는 수건을 쓰다보니 세탁물이 생각보다 적다예전 아파트에서는 세탁기 한 대당 쿼터가 여섯 개 필요했는데 여긴 쿼터 세 개면 된다. 대신에, 세탁과 같은 빈도로 방 청소를 부탁하는 메이드에게 팁을 남긴다. 오늘은 메이드 서비스 팻말을 문에 걸어두고 점심 약속에 나갔다가 오후 늦게 돌아와보아도 방이 그대로였다. 못 본 걸까. 프론트에 말할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침대에 누웠다. 그래요 그러세요 그렇게 여길 지나가세요 지나쳐가세요. 너무 지쳐있었다. 시간을 보냈다. 전날 저녁에 이어 점심까지 너무 많이 얻어 먹었더니 저녁때가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아 굶을까 고민하다가 체리를 씻어 먹었다. 이제 체리가 한 주먹 정도 남았다. 수요일부터는 며칠 동안 다른 도시에 가있으니까, 그전에 다 먹어야해. 오늘까지가 유통기한이었던 우유는 다 마시질 못해서 삼 분의 일 정도를 버렸다. 음식을 버릴 때마다 마음이 상한다. 잊지 말고 내일 저녁에 체리를 먹을 것.


병원으로 가면서 주변의 화단을 살펴보다가, 지난 번에 쓴 일기에 라벤더를 라일락으로 잘못 썼던 게 그제야 생각나서 이제야 고쳤다. 여긴 꽃이 많다. 예전에 있던 학교처럼, 꽃이 필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이미 피어있는 꽃을 가져와서 심는 모양이다. 나중에 제대로된 곳으로 집을 옮기면 예전처럼 선인장도 다시 키우고, 꽃병에 파란색 수국도 꽂아두고 싶다. 지금처럼 아침에 햇빛이 많이 드는 집이면 좋겠다.



새로운 도시에 온지 보름 정도 되었다. 도시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시골이야, 다운타운이라고 부르는 곳도 거의 다 병원 건물투성이고. 이렇게 말했다가 일리노이 샴페인(시골)에서 학부시절을 보낸 친구와 코네티컷 미들타운(더 시골)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집단으로 원성을 샀다. 기가 막히네, 그 정도를 시골이라고 부르고 앉았다니. 너 횡성에서의 시절 벌써 다 잊었구나. 그런 건가. 그런가봐. 내일부터 이틀 동안 오리엔테이션이다. 설레이지 않는다.


길게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자주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 nils frahm - it was really, really gr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