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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후배가 성당으로 차를 몰며 오늘은 최고기온이 섭씨



/ Todd Rundgren - A Dream Goes on Forever /


후배가 성당으로 차를 몰며 오늘은 최고기온이 섭씨 12도라고 해서 굉장히 신났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고, 종일 추워서 안에서나 밖에서나 계속 떨었다. 바람만 안 불어도 나을 것 같은데. 여름보다는 그래도 겨울이 좋다고 내가 그랬지. 벗는 건 한계가 있어도 입는 건 다소 한계가 없는, 그런 당연한 이유도 있지만 일단 몸이 더워지고 목과 얼굴이 뜨거워지면 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니까. 이제는 겨울이 나은 건지 확신이 안 서. 조금은 낮아지고 있나 생각해(이건 "나아지고"의 오타가 아니야). 이미 오래 전에 임계점을 지난 걸지도 모르지. 후배는 오늘 주기도문 외울 때 내 손을 잡고는 언니 손 참 따뜻하네요, 했어. 그런데 나는 사실 오늘따라 유독 길었던 미사 내내 손이 시리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은 의아해져서 나도 모를 표정을 짓고.

가끔 나는 내 표정이 궁금해, 그래서 누운 채로 거울을 들고 나를 들여다본 적도 있어. 표정은 잘 모르겠고 내가 그냥, 있었어. 그야말로 그냥 있었어(이걸 어떤 언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지). 작년 가을 언젠가 도서관 앞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 그날따라 날씨가 좋아서 나는 나무 그림자를 보고 있었는데 모르는 여자애가 지나가다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우냐고 물었어. 아니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애는 나를 정면으로 보고는 웃더니, 내가 너무 우두커니 있어서 우는 줄 알았다며 사과했고. 내가 정말 울고 있었다고 해도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 싶기도 했지만. 그리고 몇 주 후 친구 집에서 그애를 만났다. 이제는 가볍게 인사하는 사이가 됐어.

비슷한 모양으로 그저께도 난 친구 집에 있었고, 오랜만인 떠들썩함과 남들의 흥청망청에 나도 신나서 벽에 기대어 그 소란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게 또 왜 그런 표정이냐고 물었어. 무슨 걱정하냐고. 아닌데,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시선은 내 얼굴을 꼼꼼히 살피고. 그러는 네가 걱정있는 건 아니냐고 되묻고 싶었고. 어두워서 나는 내 표정을 모르고. 하지만 나도, 나 혼자만으로도 소란해. 아주 많이. 꼭 그 소란 속에 있어야만 소란한 건 아니지 않나.

울었던 적. 내가 그때 끝내 막차를 타고 집에 가다가 고개를 숙이고 조금 더 울었던 건 가방 속 시집의 접힌 귀퉁이를 열었을 때 그날 오전에 읽었던 "…나는 미안했고 / 미안한 것만으로 나날을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이성복)"라는 구절이 나와서였던 것도 맞는데, 나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도 잘 살 수 있으니까 괜히 양심이 상해서 그런 것도 맞긴 한데, 그런데 아마도 그게 전부는 아니겠고 더 생각해 보면 내가 정말 불쌍한 것 같아서(나는 귀가 얇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니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무도 떠들지 않는 지하철 안에서 난 머리가 너무 복잡해져서 줄곧 아랫입술 안쪽을 씹었다는 것, 그래 그거 하나는 확실하고 심지어 아직까지도 입 안이 살짝 너덜너덜해, 꼭 그 때문인 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쓰고 보니 이건 필요 이상으로 긴 문장이야.

그러나 냉정하게 말할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다른 어떤 것도 아니고 자세교정 정도야. 등이 아파. 드물게 손끝이 저릴 때마다 많이 무서워, 그보다 더 드물게 부정맥이 올 때보다도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