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aig Armstrong - Glasgow Love Theme /
오늘은 꽤 많은 일을 했다. 혼자였던 시간이 적었다. 비가 많이 오자, 여름 중순 찢어진 장화를 버린 일이 늦게나마 아쉽다. 날이 너무 추워서, 집에 들러 늦가을에 입을 옷을 상자에서 꺼내 입고 다시 학교로 갔다. 이번 학기 처음으로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신입생들이 우글대는 식당에서 동기들과 저녁을 먹었다. 신입생 누구와 재학생 누가 사귀기 시작했대, 등의 잡담을 들었다. 나는 그게 누군지 몰랐다. 경영대에서 파는 커피는 향은 최고지만 맛은 그럭저럭이다. 도서관 자판기 커피는 끝맛이 역해서 반을 마시고 버렸다. 지난 사순절에 겁도 없이 커피를 끊었다가 사경을 헤맨 적 있다. 잠을 자도 머리가 아팠고 잠을 안 자도 머리가 아팠다. 그때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내가 커피 대신 에너지드링크를 마신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급한 시험을 앞두고 딱 한 번 마셨을 뿐이다. 당시에 몸도 마음도 좀 상했던 건 사실이다. 이번 학기, 나는 결심대로 아주 건강하게 먹고 있다. 볶은 야채 넣은 카레도 끓이고 파스타도 만들고 연어 덮밥도 맛있게 할 줄 안다. 살이 좀 찌려나. 나를 좀 더 알고 싶다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데. 아무래도 올해의 모든 사건은, 연초에 신이를 한 시간 만난 것에서 비롯되나 생각한다. 쓸데없는 추리. 나는 네 시간 후에 일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