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uvelle Vague - Bizarre Love Triangle /
오늘은 작년 4월부터 일했던 실험실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몇 주 동안, 실험 전부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 두느라 주말 할 것 없이 거의 매일 실험실에 나갔었고, 어제는 밤 아홉 시까지 남아서 데이터 백업을 했다.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열심히 실험을 하고, 짐을 싸는 교수님 가족을 뒤로 하고 조금 전 실험실에서 나왔다. 헐렁해진 마음으로 도서관으로 걸어가는데, 내가 지금 실험실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웠다. 그래도, 실험실에서의 마지막 날이 오면 뭔가 아주 많은 생각이 교차할 것 같았는데 막상 그날이 닥치고 나니 의외로 별다른 감흥은 없고, 그냥 피곤하다는 생각 밖에 없다. 오히려 지난 주말에 랩에서 일할 때 더 야릇한 기분이 들어서 실험 다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괜히 실험실 여기저기 사진도 찍고, 그랬던 것 같다.
난 정말, 졸업할 때까지 이 실험실에서 일하다가 여기서 졸업 논문도 내고 그럴 줄 알았다. 다른 실험실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새로 일할 곳을 찾는 과정이 귀찮다는 생각도 좀 있었고, 지금 실험실도 나와 잘 맞는 것 같아서 그냥 눌러앉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몇 달 전 교수님이 떠난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에는, 마음의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상태여서 어안이 벙벙해지고 그저 막막하기만 했는데 그래도 곧 좋은 새 실험실을 찾을 수 있었고, 어차피 졸업하기 전까지 내내 같은 실험만 하는 것보다는 마지막 일 년은 안 해보던 것도 해보면서 더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결과적으로도 나에게 더 이로운 것 같아서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일 년 넘게 일했던 실험실이 거의 텅 비어버린 걸 보는 건, 여전히 기분이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사실 지금은 그 서운함보다는. 며칠 동안은 랩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즐거움이 더 지배적이다. 어차피 그 "노는" 기간에는 시험 공부를 하게 되겠지만...
아직 실험실에 내 물건 몇 개가 남아 있어서 이번 주 내로 가지러 가야한다. 실험을 마치고 현미경 작업이 남은 슬라이드도 다른 교수님 방 냉장고로 옮겨놔야 하고, 내일은 교수님이 공짜로 주신다고 한 책꽂이와 푸톤 등을 가지러 교수님 집에도 가야한다. 그래, 아직 다 끝난 건 아니네.
그래도 이제는 이 컴퓨터로 데이터 정리는 못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