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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존재

sketch 005




- 내가 어릴 때 죽는 걸 되게 무서워했거든. 아니, 지금도 물론 무섭긴 하지만. 그런데 사람이 죽는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내가 여섯 살 때 쯤인데, 그때 내가 이집트에 관한 책을 읽었어. 거기 나와있길, 고대 이집트에서는 돈 많은 사람이 죽으면 미라로 만들어서 죽어서도 영원히 살 수 있게 했다는 거야. 그래서 엄마한테 사람이 죽는 게 뭐냐고 물어봤고, 뭔지 알고 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진짜 너무너무 무서워져서 엄마한테 나 죽으면 미라로 만들어달라고 말하고는 방으로 돌아가서 커튼 뒤에 숨어 있었어.
"커튼 뒤에? 왜?"
- 몰라, 그냥 너무 무서워서? 그러고 한 5분 있다가 다 까먹고 또 놀았지 뭐.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가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은 또 신들이 안 죽는 이유에 대해서 써 놨더라고. 그 무슨 열매랑 주스를 매일 먹어서...
"넥타르랑 암브로시아?"
- 응, 그거. 그래서 그때 또 고민했어. 나도 올림푸스 산에 가서 그거 먹고 안 죽어야겠다고.
"하하, 어린데 혼자 별 생각을 다 했네."
- 그치? 그래도 그땐 꽤 진지했는데... 나 막, 프시케를 제일 부러워했어. 한때는 인간이었다가 안 죽는 신이 된 사람이, 책 읽어보니까 걔 밖에는 없는 것 같더라구. 왜, 프시케가 에로스랑 결혼하고 고생해서 신들이 걔도 신 시켜줬잖아.
"그래서 그때부터 남자 잘 잡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은거구만!"
-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아무튼 죽는 건 무섭다구. 아직도 무서워. 아마 계속 무서울거야.
"나도 죽는 거 무섭긴 한데 사실 그것보단 너무 늙는 게 더 무서워."
- 그런가? 하긴 K도 늙는 거 무섭다구, 여든 전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엄청난 말을 했었어. 예전에.
"아, 난 그 정돈 아니고. 나 백 살은 찍을거야."
-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