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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몸이 바쁘면 마음도 바빠지고 자연스레 잡념이 사라져서




/ Totally Enormous Extinct Dinosaur - Garden /


몸이 바쁘면 마음도 바빠지고 자연스레 잡념이 사라져서, 혹은 기억이 안 나서,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좀 편하다. 몇 시간 동안 숙제를 하고 논문을 읽고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고 실험실에 나가고 괜히 계속 왔다갔다 바쁘게, 바쁘게. 여유가 정말로 마음 먹는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 반대의 상황도 가능할거다. 나에게 먼지가 쌓일 만한 빈틈이 없도록 채우고 싶다. 가득가득. 일부러 더 바쁘게 살자.

그래, 난 생각이 너무 많다. 마음에 빈틈이 생기면 사념이 하나둘씩 각질처럼 올라온다. 난 참 많은 경우를 상상하려고 한다. 그 상상을 누르자니 머릿속이 자꾸만 와글거린다. 그래도 몸이 바쁘면 그 왁자지껄한 소리가 좀 묻힌다.

해질녘에는 누구나 그 어떤 의자도 편하게 느낀다고 했다. 난 상황이 나를 만드는게 항상 싫었다. 예전에 나에게서 이 말을 들은 Chelsea는, 상황이 만든 너도 결국 너일 뿐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해주었지만 그때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진 것도 사실은 일시적이었을 뿐 나는 여전히 상황이 나를 만드는 걸 상상하면 마음이 무겁다. 내가 상황에 맞서지 못 하고 진게 되어버릴까봐 그런가. 아니, 그것보다 일단 Chelsea가 나에게 한 말들이 전부 다 진짜가 될까봐, 그게 무서운건가? 근데 난 그런 것들을 무서워해야 하지?

결국은 하나하나 모조리 무거워하는 내가 문제다. 내 흐른 시간과 흘러갈 시간이 무겁고 내가 뱉는 말과 너의 말이 무겁고 내가 감사히 받고 있는 것들이 무겁고 따라서 내 주위의 공기도 내 날숨과 들숨도 하나하나 다 무겁다. 다들 엄청난 밀도로 나를 짓누른다. 하지만, 숨막혀하던 고3 시절의 나에게 준양이는, 내가 나를 놓아주지 못 하면 아무도 나를 놓아주지 못 한다고 했다. 그때 이후로 몇 년이 지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아니 아직까지도, 난 흘러도 좋고 흘려도 좋은 나이인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일렁여도 좋은 날, 얼마 남지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