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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예전에 식사 도중에 어떤 일을 싫어하지 않으면 적성에



/ Jonsi - Boy Lilikoi /



예전에 식사 도중에 "(어떤 일을) 싫어하지 않으면 적성에 맞는거야"라고 재형 오빠가 그랬는데, 나는 실험실 일이나 리서치가 싫지 않고 재미있기도 하니까 정말 적성에 잘 맞는 걸까? 아니면 이건 고등학교 이후로 지금까지 주욱 계속되는 환상인걸까. 환상이어도, 그리고 이 다음 문장이 정말 심심하게 들릴 수 있어도, FISH - 방금 찾아봤는데 한글로는 "형광 동소 보합법"이란다 - 를 마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염색체는 너무 예뻐서 기분이 좋다. 교수님이 그냥 건성으로 뷰리풀 뷰리풀 하는게 아니었다.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 몇 시간씩 현미경을 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자면 왠지 배경 음악이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음악을 들으면서 하는데, Jonsi의 노래를 들으면서 하면 그냥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무작정 행복해지고 Crystal Castles의 새 앨범을 들으면서 일을 하면 뭔가 더 아스트랄 한 것이, 우주여행을 하는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전기영동만 하던 Phil도 내 말대로 아이팟을 들으며 내가 일하던 현미경을 들여다 보고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늘 오전에는 Crystal Castles의 노래를 랜덤 재생해두고 일했고, 오후에는 Jonsi의 Boy Lilikoi만 계속 들으면서 일했다.

우주, 라는 단어가 나와서 말인데, 어제 오늘 내내 생각한 것이, 형광 파랑색으로 빛나는 그 쬐끄만 옥수수 핵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 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내 손바닥보다도 작은 그 슬라이드 위가 또 다른 소우주다. 이 세상은 그닥 그렇지 않지만 걔네들은 너무 고요하고, 조용하게, 가만히, 빛난다. 항상 과도한 냉방 때문에 손이 시렵기는 해도, 염색체 사진을 하나하나 찍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지고, 또 기뻐서 들뜨기도 한다.

이제 이 닦고 자면 내일 아침 일어나서 또 산뜻한 마음으로 랩을 가겠지!